중산층 육성의 전제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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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근로자재산형성촉진법을 연내로 제정키로 한 것은 그동안 소외되었던 중산층의 보호육성문제에 구체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사실, 중산층의 보호육성문제는 이제 한국사회에서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이 이상 지체시킬 수 없는 심각한 현실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중산층의 존재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뜻에서뿐만 아니라 그것 없이는 사회의 안정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근로자 재형 촉진법은 월 소득 20만원 이하의 소득자가 재산형성을 위한 장기저축을 할 경우 정부가 소정금리 외에 할증금을 주고 또 주택마련을 위한 장기저리의 금융지원을 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기업이 종업원의 재산형성을 지원토록 세제 면에서의 유도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제도 면에서 서방국가 중 가장 모범적인 재형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서독의 예를 많이 참작하려는 것 같다.
서독은 재형 제도를 통해 장기저축유치와 중산층의 육성에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재형 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먼저 이 재형 촉진법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환언하면 재형 제도의 근본바탕은 물가안정과 적정임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임금의 절대수준이 형편없이 낮은데다가, 특히 최근에 와서는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향상 율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74년 10월 현재 광공업 상용종업원의 월 급여수준은 3만1천7백60원에 불과하다. 전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를 보더라도 74년 3·4분기 중 소득이 월 5만4천 원인데 가계비지출이 4만7천8백20원이나 된다. 가계비 외에 조세공과금 9백30원 등을 제외하면 가계흑자는 고작 4천 원을 조금 넘을 정도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이러한 낮은 임금수준으로선 재산형성은커녕 기본생활의 유지마저 어렵다는 사실인 것이다. 원천적으로 저축할 여유가 없으면 아무리. 재형 제도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재산형성이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재형 제도가 제구실을 하게 되려면 적어도 근로자가 기본생활을 하고도 재산형성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임금 수준이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중산층재산형성의 전제가 되는 분배 및 임금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선결문제라 하겠다. 임금인상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수출이 안되어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근로자 재산형성정책은 허울좋은 장식품에 그칠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적정임금을 통한 성장혜택의 균 점이야말로 국민간·노사간의「컨센서스」를 높여 높은 생산성과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원동력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적정임금의 보장과 아울러 안정기조의 견지도 재형 제도의 밑바탕이 된다. 근로자재산형성은 오직 장기저축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므로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재산증식은커녕 그 잠식밖에는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74년과 같이 도매물가가 44%나 뛰는「인플레」아래선 아무리 정부에서「보너스」금리를 주어도 장기저축이 증가할 이가 없는 것이며, 또 장기저축을 하도록 권장할 명분도 없다. 서독의 재형저축이 급증한 것도 물가상승률이 10여 년간을 통해 3∼5%선에서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근로자재산형성은 법의 제정이나 제도의 마련만으로 쉽게 이룩되는 일이 아님을 새삼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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