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아침|김정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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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꼭두새벽에
물길어 주시던 도련님.
발 벗고 나선
그 우물가의 정성만큼
한결 밝아지는 이 아침
관세음보살
길 따르던
산골 약수터 같은,
잡목림 사이
오색찬란한 낙엽의 향기,
산기 맑은 향기
그대 부르면
뒤따르는 메아리,
영혼의 산물소리.
자고 새면
조반상에 어리는 현세이나,
다수운 입김에 피어나는 찬서리.
꼭두새벽에
물길어 주시던 도련님,
그 은공만큼, 서리 아침에
내 주름살은 깊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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