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조용만씨 두 중진작가 단편집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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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문단의 특이한 존재로 손꼽히는 두 중진작가 김정한씨(56)와 조용만씨(65)가 때를 같이하여 극작 집을 출간, 건 재를 과시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교단을 지키면서 꿋꿋이 극작 생활에 전념해온 이들 두 중진작가의 단편집출간은 후배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의욕을 고취시키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김정한 소설선집>
40년 일제의 횡포에 항거하여 붓을 꺾은 후 66년 다시 창작활동을 재개한 김정한씨에게 이 소설집은 후기문학 활동의 중간결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71년 제2창작집『인간단지』를 내놓은바있고 이번의 창작집이「데뷔」작인『사하촌』(36),『옥심이』(36),『항진기』(37), 『기로』(36)등 초기작품을 함께 수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20여권의「블랭크」로 인한 작품세계의 변모, 그가 지향하는「리얼리즘」문학의 진수가 이 한 권의 책에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 황석영씨가 말한 대로 그의 소설은『마치 헐벗은 야산 위에 내려 쬐는 햇살처럼 강렬한 원색이며 흙을 근거로 살아가는 농민들의 잡초와 같은 삶이 바로 우리자신의 살아가는 생명력임을 알게 하는 작품인 것이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현실, 혹은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사리 움츠러드는 많은 후배작가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작가의 체험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라면 김정한씨의 경우 체험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중핵을 이룬다. 가령 일제 때 구금생활의 기록인『어둠 속에서』(70), 해방 후 감옥살이의 체험기인『과정』(67)따위가 그것이다.
이번 창작집에는 김씨 평생의 그러한 체험들이 중심을 이루는 단편17편이 수록돼 있다.

<고향에 돌아와도>
김정한씨처럼 창작생활에「블랭크」는 두지 않았으나 모처럼 단편집『고향에 돌아와도』를 내놓은 조용만씨는 1930년대 문단에「데뷔」한이래 2년만에 1편 꼴로 작품을 발표해온 과 작의 작가다.
잠시「매스컴」에 몸담았던 것을 제외하면 주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반평생을 보냈던 조씨는 주로 그의 갖가지 체험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김씨의 작품세계와 맥락이 닿고 있으나 초기「구인회」의「멤버」로서 순수문학을 옹호했던 점등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문학태도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조씨가 작품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역사라든가 상황 같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 그 상황에 처한 개인의 입장을 서술함으로써「산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쳐 보자는 데 있는 것 같다. 가령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육당이나 춘곡은 그들의 실상이라기보다는 흘러가 버린 역사의 한 증언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근년에 이르러 조씨의 작품세계는 더욱 완숙해진 가운데 현실감각이 더욱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이번 작품집의 제목으로 되어있는 단편『고향에 돌아와도』는 수십 년만에 귀국한 학자의 눈에 비친 조국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이 모습은 바로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조국의 참모습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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