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인재를 키우자]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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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석달간 미국 GE.네덜란드 필립스.일본 도요타 등 11개의 세계 선진 초일류기업들을 방문, 핵심인재 현장을 돌아봤다. 이들은 모두 핵심인재 전쟁(War for Talent) 중이었다.

핵심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수만~수십만명을 먹여 살릴 한명의 핵심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한국기업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룹 총수가 업무의 절반 이상을 인재 육성에 쏟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의 핵심인재 선발.육성 현황을 삼성전자.LG전자.포스데이타의 인사담당 임원으로부터 들어봤다.(편집자)

▶사회=국내외 기업들이 왜 이토록 핵심인재 양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나?

▶김영기 LG전자 부사장=21세기에 기업을 이끌어갈 CEO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유능한 CEO를 탄생시키려면 유능한 사업본부장, 유능한 임원, 유능한 관리자가 육성돼야 한다. 1990년대부터 이 문제로 고민하면서 결국 당시 시스템으론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과정에서 '핵심인재'라는 용어가 나오고, 인재들을 어떻게 발굴.육성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시작됐다.

▶안승준 삼성전자 상무=디지털시대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변화에 신속하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핵심인재의 중요성이 매우 커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말처럼 한명이 수십~수백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기업의 운명이 핵심인재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핵심인재를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고창현 포스데이타 전무=사내 직원인 경우 현업 부서에서 위원회를 구성해 파트별.직종별로 핵심인재를 선발한다. 이렇게 선발된 핵심인재에 대해 회사는 이들과 상의해 커리어 로드맵이란 경력 계획을 작성한다. 핵심인재가 원하는 직장 내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경력관리를 해야 하는지를 짠다는 의미다. 물론 한번 핵심인재가 됐다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니다. 수시로 바뀐다. 전체 임직원 중 핵심인재는 대략 10%선이다.

▶김=CEO가 핵심인재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인재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우리 회사는 CEO의 관심이 대단하다. 외환위기 때도 핵심인재 육성프로그램엔 손대지 않았을 정도다. 전체 인력 5만여명 중 2~5%가 핵심인재다.

▶안=우리 회사는 핵심인재의 선발.양성이 최우선 관심사다. 경영진을 평가할 때 핵심인재 양성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확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직무를 준다든가, 다른 사람과 달리 빠른 승진기회(패스트 트랙)를 준다. 핵심인재가 입사하면 어떻게 연착륙(소프트 랜딩)을 시키느냐가 숙제다. 외국에서 오는 사람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족까지 배려한다. 미국 기업은 핵심인재가 대략 5% 정도 되는데 우리도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김= 핵심인재가 몇%가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핵심인재들을 발굴.육성해서 보상하고 피드백 해주는 선(善)순환적인 프로세스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회사는 전략적으로 관리하는데, 즉 핵심보직을 정하고 보직별로 요구되는 핵심인재의 특성을 도출한다. 보직이 요구하는 역량과 핵심인재 후보자의 역량 간 갭이 있다면 교육이나 1:1로 지도하는 멘토(mentor)제도 등을 통해 갭을 메워주고 있다.

▶사회=그러나 선진기업들과는 격차가 있는 것 같다. 선진기업들은 사내 육성에 주력하지만, 국내 기업은 외부 스카우트 채용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안=경영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퇴출이 용이하다든가 잡 마켓(job-market)이 오픈돼 있다. 또 우리는 어학능력과 창의력 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외부 인력 채용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국내 인력이 역동적인 데다 변화 대응 속도가 빨라, 국내 인재로 국제경쟁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사내 임직원 모두를 핵심인재처럼 대우하고, 핵심인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직이 탄탄해져야 핵심인재도 힘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와 여성인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국가 차원에서도 핵심인재 양성이 주요 이슈가 돼야 한다. '이중 국적'문제도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큰 사회이슈가 안됐을 것 같은데.

▶고=기업 경쟁력은 인재에서 나온다는 점을 정부도 인식해야 한다. 특히 국적을 따지지 말고 필요하면 누구라도 채용해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국동포 사원을 하나 채용하려 해도 법적 요건을 갖추는 데 4~5개월 걸린다.

▶김=인도.러시아에서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을 데려와도 이들이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가족과 생활해야 하는데 부인의 취업 문제, 자녀교육이 걸림돌이다. 제도적 환경 측면에서 정부의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안=세계는 지금 관.산.학이 힘을 모아 인재를 키우고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역량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국적.병역.이민.교육 등이 모두 역량 중심,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뀌어야 한다.

정리=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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