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엔 「그룹」 이민을|한국 교민의 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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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브라질=신용우 특파원】『「라틴아메리카」에 어디 토박이가 따로 있는가. 누구든지 와서 살면 주인이 되는 것이다』-.
「브라질」의 어느 하원 의원은 중남미 순방 때 정일권 국회의장이 베푼 「리셉션」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들의 중남미 진출상은 놀랍다. 「브라질」에만도 80만명이 정착, 이들 2세가 하원의원 3명·장관 1명 등으로 어느새 정계에서도 기반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이민수가 늘어가자 간단한 기념품에서부터 조선·제철소 건설·주택 단지 조성·「아파트」 건립 공사 등에까지 투자의 손을 뻗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브라질」에서 이들이 사들인 땅은 일본 본토의 2배가 넘는다는 얘기. 전 지구상의 14%에 해당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인구는 7% 밖에 안되고 각종 천연자원이 널려 있는 광활한 「라틴아메리카」에 우리도 「제2의 한국」을 건설해 한국인이 차지하는 땅 덩이를 우리의 자원 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남미에 있는 우리 교포는 1만여명. 그중 「브라질」의 약 8천명이 가장 많지만 그것도 일인에 비하면 1백분의 1도 안 되는 비율. 다음이 「아르헨티나」의 l천7백여명, 「파라과이」의 6백50여명 등이다.
이들 대부분이 5·16 혁명 후부터 농업 이민의 형식으로 나갔으나 현재 90% 이상이 상업·기타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다. 이것은 벌써부터 우리 이민 정책의 큰 문제점으로 예상돼 온 것이며 이민 대상국으로부터 경계를 받게 됐다.
상인 중에서도 60% 이상이 행상으로 생활을 꾸려 가고 있으나 그것도 이제는 교포간의 경쟁이 심해졌다는 것. 지금까지의 남미 이민은 실패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민간 사람 중 농사에 경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다가 노동력이 부족한 그곳에서 넓은 땅을 개간하자면 큰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 「브라질리아」의 교포 김모씨는 49만평이나 차지해 놓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해외 개발 공사가 9년 전 「파라과이」에서 사들여 분할 개간하려던 4백50만평의 「상페드로」 농장도 같은 사정으로 방치돼 있다. 농지를 분배받은 교포들이 모두 팽개치고 떠났기 때문이다.
농업 이민도 최소한 2천만원 이상의 자본을 갖고 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게 교포들의 일치된 견해다.
「파라과이」의 「파스토르」 외상도 『농업이나 특수한 기술을 가진 이민은 환영하지만 상업 이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농업도 최소한 1년간의 생활비와 농기구 구입을 위한 자금을 갖고 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에서 이민 길이 가장 활짝 열려 있다는 「파라과이」도 이런 실정이다』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의 길거리는 「오린지」 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있으며 인가 주변에서도 익어 떨어진 열매가 그대로 썩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 농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눈에 띄었다. 양계 업을 하는 교포 김영남씨는 『처음엔 아깝다고 주워 모았으나 거둬들여도 주체하기 어려워 이젠 만성이 됐다』고 했다.
이처럼 흔한 농작물에 대한 가공 시설이 없어 「파라과이」는 가공 식품의 90% 이상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사들여다 먹는다고 「아순시온」 시내에서 식품점으로 성공한 교포 구본홍씨는 안타까워했다. 면화도 씨가 들어 있는 것을 그대로 수출한다는 것. 흔한 1차 산품을 싸게 말아서 비싼 가공품을 사들여 쓴다는 얘기다.
중남미도 이제 농업이나 목축업도 기업 규모의 진출이야 하며 자본과 노동력이 합쳐진 형태의 「그룹」 이민이어야 한다는 것이 현지 교포들의 견해다.
특히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는 가공업 또는 제조업의 진출이 바람직하다는 얘기.
정부의 이민 정책도 종합적인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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