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8천억 원 예금의 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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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 현실화 조치는 필연적으로 통화신용문제에 깊은 충격을 주고 있으며 때문에 통화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상황이다.
지금의 물가 상승 추세로 보아 당국이 아무리 최선의 종합 물가 대책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연율 30% 이하의 물가 상승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자칫 잘못 다루면 1조 8천억 원 수준에 있는 금융기관 예금의 상당부분이 구매력화 할 염려가 있다. 특히 올해 들어 각종 비축금융이 대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 예금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사실은 통화신용의 장래를 우려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솔직히 말하여 지금의 통화금융정세를 방치한다면 내자동원을 생각하기보다는 현실화된 물가와 통화량 증가에 따른 상승효과 조차도 막기 힘들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통화신용정세가 이처럼 불안하다면 무엇인가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저축성 예금의 통화성 예금화를 막을 뿐만 아니라 추가 저축의 실현을 위한 유인을 주어야하는 것임은 지극히 자명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물가정책은 현실화 조치이외에 이렇다할 것이 없으며, 그렇다고 초 긴축 재정을 집행하는 것도 아니다. 물가가 오르는데 재정에서 구매력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라면, 당연히 금융 면에서라도 무엇인가 구매력을 흡수할 수 있는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금융조차 비축금융지원 등을 계속 강화한다면 구매력은 흡수할 길이 없는 것이며, 물가 현실화의 압력을 상쇄시킬 요인은 어느 곳에도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물가 대책이 단순한 현실화만을 뜻한다면 이는 정책의 포기나 다를 바 없다. 현실화 이후의 악순환을 단절시키는 대책이 다각적으로 강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 각의는 아무런 정책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무엇인가 방향감각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정이 당분간 적자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금융 면에서라도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 면에서 유동성을 흡수하려한다면 지금과 같이 안정계정이나 안정증권 조작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가 없다. 이들 중앙은행의 유동성규제는 일반은행의 대출능력을 규제하는데 영향을 미칠 뿐, 예금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막대하게 축적되어있는 저축성예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유동성규제로 막을 수는 없다. 또 추가여신에 필요한 자금을 비「인플레」적으로 조달하려면 저축유인을 주어야 한다.
어느 경우를 생각해도 중앙은행의 유동성 규제만으로 지금의 통화신용정세를 수습해나갈 수는 없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금융기관의 여수신 금리를 조정하든지, 아니면 물가에 「슬라이드」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조차 물가 안정목표를 제시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고정 금리 제는 당분간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리를 물가에 「슬라이드」시키든지, 아니면 표준금리는 고정시키되 물가상승 분을 대출금 및 저축성예금 원본에 정기적으로 가산하는 방법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금융기관 차입 의존도가 높은 업계가 부당한 가격인상을 시도함으로써 자기의 채무액을 자동적으로 확대시키려 하지 않는 이득이 있어 물가의 자동 안전판이 마련된다.
동시에 저축 자들은 물가를 걱정하지 않고 예금을 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유동성이 흡수될 수 있다. 정책당국의 깊은 검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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