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 아니면 이젠 사랑도 할 수 없는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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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21면

SBS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인기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대의 수퍼스타 김수현과 여전히 아름다운 때의 수퍼스타 전지현과의 만남. 여기에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들어온 당신’에서 천방지축 좌충우돌하면서도 한편으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박지은 작가의 결합. 특유의 유머 감각 넘치는 세세한 현실 묘사에 깔깔거리다가도 대중의 날카로운 비난의 눈길과 여자 배우들 간의 경쟁심, 시청률에 목매고 돈 잘 버는 자식 덕 보려는 부모까지, 오늘날 스타가 처한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있어 동경심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컬처#: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유감

김수현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해지는 여성팬들의 마음처럼 가볍지 않고 진중하며 그러면서도 여인에게 이끌리는 순간만큼은 순진하고 허술해지는 모습으로 여전한 매력을 뿜어낸다. 드라마는 400년 전 과거의 인연에 외계인 초능력자라는 환상의 요소, 스타를 둘러싼 연예계의 현실 묘사, 그리고 재벌가를 둘러싼 음모까지 흥미로운 배경들을 깔고 있다. 승승장구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잇따라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 속 초현실적 능력의 주인공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이종석, ‘주군의 태양’의 공효진, 그에 앞서 정통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화제의 드라마 ‘나인’의 이진욱도 초능력자다. ‘별그대’의 김수현은 초능력 정도를 떠나 아예 ‘수퍼 히어로’나 수퍼맨’으로 불린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제 꽃미남으로도, 연하로도, 재벌 2세로도 쉽게 연인의 마음을 잡기 힘들어진 오늘날 남녀 관계의 팍팍함을 반영하는 것일까?

환상적인 요소의 도입은 확실히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고 주인공의 매력을 폭발하게 한다. 어차피 로맨스물은 판타지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름답게 맺어지기란 현실 속에서도 쉽지 않다. 이왕이면 더 멋지고 더 완벽한 연인과의 판타지가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혹시 너무 쉬워 보이지는 않은가? 몇 백 년을 기다려 나를 만나기로 되어 있는 운명의 인연, 교통사고에서 죽음 직전에 나를 구해주며 만나는 순간(교통사고로 인한 만남은 ‘너목들’에서도 사용됐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인데.

환상을 전제로 한 드라마가 왜 일일이 현실적이지 않느냐고 불만이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배경과 전제는 환상에서 가져왔다고 할지라도 이 드라마가 남녀 간의 사랑을 중심에 놓은 것이라면 적어도 남녀 간의 만남과 그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에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드라마는 아무리 환상 속을 걷더라도 보는 이들로서는 가장 예리하게 오늘의 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남녀가 가까워지는 건지, 왜 서로 끌리게 되는 건지, 그러기 위해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비춰 주인공들이 만나는 가장 진실한 장면, 즉 인물들이 만날 수 있는 완벽한 순간이 그들의 삶과 관련해 어떤 것인지, 어떤 장면이 주인공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우며 다른 드라마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만남인 것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단지 운명이고 판타지이며 늘 나오는 교통사고의 순간에 우연한 만남,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고 그가 필요한 일이라면 모든 게 해결 가능하다면, 그건 좀 게으른 선택인 것 같다.

더구나 외계인이니 초능력자들의 세계와 논리가 단지 연애 관계에만 장애나 도움을 가져다줄 ‘지구인과 타액이 섞이면 안 된다’든지 법조지식에서 의학지식까지 만능에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까지 가졌다는, 별로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면 더욱 아쉽다.

잇따라 나오는 초능력자의 판타지 드라마를 놓고 벌어지는 표절 논쟁은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더 문제는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주인공과 전 우주적인 운명의 두 남녀를 만들어 놓고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손쉬운 전제들이 로맨틱 드라마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 일 아닐까.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드라마들은 앞으로 수퍼맨보다 더 전지전능한 울트라 수퍼 히어로를 등장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봐야 이미 거기에 익숙해진 팬들은 “또야?” 하고 점점 심드렁해질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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