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의 이상 폭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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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지 쌀값이 햅쌀의 출회 증가와 더불어 이상적으로 폭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매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 채 쌀값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농업 소득의 50% 수준이나 차지하는 쌀 생산을 적극 장려해야 할 농정 당국이 쌀값 문제를 방관만 한다는 것은 농민들의 증산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점에서 쌀값 대책은 시각을 다투어 마무리돼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우선 햅쌀 수매 가격의 결정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늦어진다 하더라도 햅쌀의 도시반입 금지조치를 푸는 대신 정부 수매 작업이 개시될 때까지 농사자금 회수 등 자금 공세를 중지해야할 것이다. 물론 양곡 관리상의 적자 누적을 줄이고 쌀값 하락을 촉진시킴으로써 통화 환수를 기하는 동시에 물가지수를 낮춘다는 목적에서 햅쌀의 도시반입을 금지하는 한편 보유 양곡을 소화시켜 온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를 넘어 고시가격 이하로 쌀값이 떨어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물가 압력이나 양곡관리 적자를 농민에게 전가시키는 결과가 됨을 중시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급한대로 쌀값이 고시가격 이하로 폭락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쌀 유통을 자유화시키고 보유미 방출을 중단하는 한편 자금회수 공세를 늦춰야 한다. 이 정도의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식량자급이다, 새마을 사업이다 하고 아무리 떠들어 보아도 농민들이 마음으로 정부 시책에 호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추곡 수매가격의 인상폭을 좁히려 하는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풍년이 되어도 쌀값이 눌려 농가의 실질 소득은 결코 늘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농민들에게 확인시켜 주는 우만은 저지르지 않기 바란다. 더욱이 정부 수매가격을 조금밖에 올릴 수 없어 산지 시세를 떨어뜨려 정부 수매 실적을 올리려고 정부가 쌀값을 떨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농정처럼 국민으로부터의 장기적 신뢰 관계가 중요한 정책분야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 농정이 다른 정책 목적 때문에 지나치게 희생되도록 해서는 아니 되겠다.
따라서 물가 상승률 10%선에 증산 유인을 가산하는 선에서 추곡 수매 가격을 결정한다는 단안을 내려줌으로써 농민들의 신뢰감을 확보하는 용단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끝으로, 예년과는 달리 15일이나 빨리 모내기를 해서 추수가 빨라진 사정을 고려한다면 수매 가격 결정을 서둘러야 할뿐만 아니라, 당장 수매작업에도 착수해야 할 것이다.
농가 경제의 구조적 특질로 보아 지금부터 연말까지의 쌀값을 적정 선에서 유지시켜 주지 못한다면 농민의 8할 이상을 점하는 중농 이하 층에 대해서는 실질 소득을 보장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연말까지의 쌀 출회량을 적정 가격에서 지지하는 일이 농가 구조로 보아 절실한 것이라면 수매 작업의 지연이 용납될 수 없다.
예년처럼 통화량 때문에 연말까지는 흐지부지하다가 연말을 넘기면서 수매를 본격적으로 한다면 이는 결국 대농 중심의 가격정책이 되어 평균 농민에게는 별로 혜택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쌀값 폭락을 긴급조치로나마 막는 한편 적정한 수매 가격으로 수매 작업을 서둘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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