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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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젠가 어떤 외국인은 『한국처럼 상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한국에는 상을 받을만한 우수한 사람들이 많아서 부럽다는 뜻인지, 혹은 그처럼 많은 상의 당위성에 의혹을 갖는다는 뜻인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에 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학부문에서 상의 홍수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자유문학상·한국문학가협회 상·자유문학자협회상 등 수많은 문학상들이 제정됐다가 언제인가 모르게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지만 현존하는 문학상만 해도 약20종을 헤아릴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문인들이 2백 명은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할 때 비록 작고한 문인, 2회 이상의 수상자, 그리고 문인협회비회원이 있는 것을 감안해도 이 숫자는 현재 등록된 문인협회회원 1천명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숫자인 것이다.
이러한 숫자상의 결과를 『문학상은 문학분야에 있어서의 공적이 뛰어나고 남달리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문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문학상의 상식적인 개념에 대입하면 적어도 우리 나라 문인가운데 4사람 중 한 사람은 뛰어난 문인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우리 나라의 문학상이 과연 하나같이 우리 나라 문인 내지 그 작품의 우수성을 확인해 줄만큼 권위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 일부 젊은 문인들에 의해 제기되고있는 「문학상 불신론」도 그들이 수상경력이 없는 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이제 우리 나라의 문학상도 어떤 전기를 마련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관점에서 주목을 끄는 일이다.
이 같은 문학상 불신론은 비단 수상경력이 없는 문인들에게서만 운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두 차례 수상한 적이 있는 문인들에 의해서도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령 연전 어느 문학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 L씨는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게다가 뜻하지 않았던 상금을 받게되니 더욱 즐겁다.
그러나 그 상이 나의 문학활동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그 상이 내 작품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상이 많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문인들도 있다.
이들의 견해는 대체로 상이 권위가 있든 없든 수상한 문인에게 더 이상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상을 주는 것만큼 바람직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지만 만약 상이 그 본질적인 권위를 상실했을 때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는 문단전체가 책임을 져야하는 사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문학상이 권위를 상실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대체로 「담합」「나눠먹기」「뒷거래」 등 추악한 단어들로 점철된다. 가령 『당신은 곧 다른 상을 받기로 되어 있으니(혹은 되도록 밀어줄 터이니) 상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는 따위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중견시인 P씨의 귀띔이다.
상은 그처럼 많지만 상금은 대체로 미미한 것이 우리 나라 문학상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다. 예술원상, 문화예술 상, 5·16민족상, 서울시문화상(이 상들은 모두 다른 분야와 함께 시상된다) 등 상금이 1백50만원에서 2백만원에 이르는 굵직한 상도 있지만 이것은 정부가 시상하는 경우고, 그밖에 대부분의 상은 상금이 고작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이다.
물론 상금의 많고 적음이 문학상의 권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상의 체면은 세워줄 수 있을 만큼의 기금은 확보되어 있어야만 상으로서의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노벨이 문학상이나 「퓰리처」상·「콩쿠르」상·「아꾸다가와」(개천)상 같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고 이름난 상의 수준에까지야 이르지 못하더라도 이제 우리 나라의 문학상도 새로운 권위를 향해 발돋움할 때가 아니냐는 것이 「문학상불신논」을 펴고있는 일부 젊은 문인들을 포함한 양식 있는 문인들의 한결같은 여망이다.
중진작가 K씨도 『나도 여러 차례 상을 받아 우리 나라의 문학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단 하나라도 권위 있는 문학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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