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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원조 한비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법과 원칙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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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선희
논설위원

딱히 흠잡을 데도 없고, 일리도 있고, 틀린 곳도 찾기 힘든데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을 본 솔직한 소감이다. 혼자 느낌인가 했는데 이후 논평들을 보니 비슷한 느낌이 많았나 보다. 답답함의 근원을 생각하다 한비자(韓非子)를 다시 들었다. 우리가 법치를 이해 못해 대통령을 오해하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한데 한비자와 박 대통령의 법치는 조금 어긋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통령은 말했다. “소통의 전제조건은 준법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데 한비자는 대통령이 전제조건으로 든 법치의 완성을 정치의 목적으로 보았다. 법치를 완성하려면 군주의 술치(術治), 즉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말하자면 준법사회를 만드는 게 군주의 일이며, 이에 정치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비자에겐 정치가 법치의 전제조건이다.

 대통령은 “국민과 다양하게 소통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불법으로 떼를 쓰는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치술은 떼쓰는 사람 때문에 필요한 것인데, 착한 국민과만 소통한 게 정치적 소통일까. 또 한비자는 지위에 따라 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고 했다. 군주는 관리를 다스리고 관리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혼자서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군주는 신하의 능력을 살펴 자리에 앉히고, 그들이 일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군주의 덕목은 ‘은밀함’이다. 군주가 특정한 것에 관심을 보이고 참견하면 신하들은 눈치만 보므로 마음을 들키지 않고 신하를 부려 목적을 달성하는 게 술치다.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불통 이미지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에 대한 곡해임을 비치기도 했다. 우리는 진정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원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법과 원칙에 의문이 드는 건 왜일까. 한비자는 “법은 물처럼 공평해야 한다”고 했다. 한데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비정상이라고 했던 신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는 여전하고, 청와대·국정원 관계자가 ‘개인적 일탈’로 민감한 개인정보(채동욱 혼외자 의혹사건 관련)를 수집한 사실이 자꾸 드러난다. 어쩌면 이렇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정황들의 돌출이 대통령의 법과 원칙이 공평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전국시대 제후국과 민주사회의 사정은 다르다. 하나 법치를 추구하면서 법치의 원조 한비자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한비자라면 이렇게 조언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본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군주는 먼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잘 살펴 혼란의 원인을 제거하는 정치술을 발휘해야 하고, 법은 고정된 게 아니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며, 백성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을 살피는 게 군주의 일”이라고.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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