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교한 추석달빛 아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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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9월12일 국민은행 아현동지점 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이정수씨 가족들은 오늘도 가장의 생사조차 모르며 쓸쓸하게 지낸 기다림의 한 해가 찬다.
아빠 없는 사이 국민학교에 입학한 맏딸 지선양은 그 동안 배운 글씨로 범인 앞에 또박또박 쓴 편지를 신문에 공개하고 있다.
『아저씨, 우리 아빠 빨리 보내주세요』라고-.
피해자의 딸이 「아저씨」라 부르고있는 범인은 지금 어느 고장 어느 처마 밑에서 한가위의 달을 보고 있는 것일까.
구로공단 「카비」강도는 범행 후 3주째 행방을 감추고 있다. 사람의 눈이 두렵고 대낮의 밝은 빛이 거북한 그도 지명수배로 쫓기는 은신생활 속에서 한가위의 달만은 마음놓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지난해 추석에는 이산가족 찾기 남북적십자 대표들이 서울·평양을 상호 방문하여 회담을 개최한 커다란 파문으로 이북실향민들의 가슴은 만월처럼 부푼 기대에 설레고 있었다. 멀지않아 휴전선 이북에 두고 온 부모와 조상들의 무덤을 4반세기만에 다시 성묘 갈「인도」가 뚫릴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한해가 차기도전에 이들의 애틋한 망향의 기대는 또 한번 저들의 비정과 비리에 무참히도 배신당한 채 다시 추석을 맞는다. 이들 실망한 실향민이 올해엔 어떠한 감회로 한가위의 달을 우러러보고 있는 것일까.
1년 3백 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내 가위 때만 같아라고 노래한 추석의 교교한 달빛은 온 누리에 비친다. 사람을 죽이고 숨어 있는 범인의 머리 위에도, 사람을 쏘고 달아난 「카빈」강도의 움츠리고 있는 머리 위에도, 그리고 자손들이 성묘 갈 「인도」를 차단하고 있는 비정의 유물논자의 머리 위에도 한가위의 달은 차별 없이 비치고 있다.
한가위의 교교한 달빛이 비치고 있는 누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추석은 스스로의 근본을 묻고 조상을 생각하며 선산을 참배하는 날이다.
살기 위해, 또는 보다 잘 살기 위해 농사에 땀으로 쪄든 몸도, 그처럼 살다가는 한 삶이 추수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라는 듯 한가위 달은 양심처럼 밝게 비친다.
사람의 눈을 피하고 햇빛을 두려워하듯 쫓기고 있는 사람도, 그처럼 사는 나날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라는 듯 한가위의 달은 모정처럼 밝게 비친다.
고래로 흔히 그랬듯이 헛된 영예를 위해 거짓 족보를 꾸미고, 가사를 헛 치장하는 세도가하며, 야심가들도 그 같은 허장성세의 백일몽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가르치듯 한가위의 달은 거울처럼 밝게 비친다.
한 가위의 밤은 정녕 고대「그리스」의 시인이 『낮보다 밝은 밤이여』하고 노래한 그때 그 밤처럼 밝다.
어제의, 그리고 오늘의 나의 행적을 이 낮보다 밝은 밤의 보름달에 비춰 조상과 자손 앞에, 양심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다짐해야할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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