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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위기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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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해 벽두에 보는 국제 정세는 그리 녹록지 않다. 곳곳에서 ‘갑오 위기론’을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120년 전 갑오년, 한반도와 그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갑오개혁과 동학혁명, 청일전쟁이라는 천지개벽의 소용돌이를 기억하는 까닭이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 반복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불투명한 미국의 패권과 강력한 중국의 부상, 공세적 정상국가로 치닫는 일본의 행보를 보면서 동북아와 한반도의 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일부에서는 아예 냉전시대에 대한 향수를 내비친다. 핵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긴 했지만, 어떻든 그때는 전략적 안정과 예측가능성이 대세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냉전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역설적으로 그 평화는 유약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지역 국가 모두가 평화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반(反)평화적 구도로 귀결되고 만다는 역설,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덩샤오핑의 ‘화평발전’ 기본 노선을 계속 고수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소강(小康)사회 건설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대내적으로는 조화, 대외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전개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 책임을 지지 않고는 일본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걸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역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통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심지어 북한조차 북·미 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최우선 정책 목표라고 주장한다.

 분명 ‘평화 담론’은 이 지역의 지도자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안보 딜레마의 심화다. 이 역설은 어디서 오는가. 가장 큰 이유로는 중국의 부상이 불러일으킨 지정학적 사고의 부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캐플런의 책 『지리의 복수(Revenge of Geography)』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은 시장과 자원, 해로 안전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국이나 일본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사라졌던 나치 독일의 전략관 ‘레벤스 라움(생존 공간)’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 같은 제로섬적 사고가 이 지역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민족주의 변수도 한몫하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와 영토 문제가 꺼져가던 불씨를 키운다. “과거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외눈박이가 되지만, 과거 역사에 집착하는 자는 두 눈을 다 잃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일본의 지도부는 식민지 침략을 부인하고 과거 전쟁을 미화함으로써 방아쇠를 당겼다. 문제는 일본의 이러한 집착이 한국과 중국의 두 눈마저 멀게 만들어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메커니즘이 반복될수록 일본의 국수주의는 더욱 노골화하고, 민족주의라는 고리를 통해 형성된 한·중·일 3국의 적대적 제휴관계는 동북아 평화에 심대한 위협으로 자리 잡아간다.

 따지고 보면 지정학적 발상이나 민족주의 정서 모두 인위적인 산물이다. 무역입국을 내거는 나라들끼리 해로 안전을 위협해서 이로울 게 어디 있는가. 또한 아무리 민족주의 충돌이 격심하다 해도, 이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지 않은가. 상식과 순리에 따르면 얼마든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순리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벽은 바로 각 나라의 국내정치다. 3국의 대외정책이 국내정치의 볼모로 붙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아베의 국수주의적 행보는 개인적 신념뿐 아니라 대내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라와 지역의 대승적 이익보다 개인의 정략적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인들과 미디어의 선정주의적 부추김이 평화를 깨고 있는 원흉인 셈이다. 중국과 한국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염려하는 동북아의 ‘무정부적 적대상황’과 ‘위기론’은 진짜 현실이 아니다. 정치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의 현실’에 불과하다. 국제법과 규범이 작동하고, 경제, 사회문화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동시에 무수한 행위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하나의 공동체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 동북아의 진짜 현실이다. 대립과 갈등보다는 신뢰와 협력의 공간이 훨씬 큰 이유다. 이제 각국의 깨어 있는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위기를 먹고 사는 정치세력을 막아서고 불신과 적대의 허구를 부술 때,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지역평화가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