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이해와 신뢰의 도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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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일은 한적이 역사적인 남북 이산 가족 찾기 사업을 제의한 「8·12」성명 두돌. 불신과 적대로 얼룩진 4반세기의 남북 장벽을 깨고 이해와 신뢰의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새 장이 열린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그 동안 쌍방은 수다한 대화를 갖고 8·12제의를 협의해 왔으나 아직껏 뚜렷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놓인 것이 사실이지만 대치로 줄달음쳐 온 전후의 남북 관계에 협상의 「테이블」을 놓았다는 점에서 8·12성명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한 것이다.
남북적 쌍방은 71년8윌12일 당시 최두선 총재가 이산 가족 찾기 사업을 제의하고 이틀 뒤 북적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대화를 튼 뒤 그 동안 예비 접촉 5차례, 예비 회담 25차례를 거쳐 지난해 9월20일 첫 본 회담을 시작한 후 현재 7차 회담까지 마쳐 놓고 있다.
이 30차례의 접촉과 7차례의 서울∼평양 왕래를 통해 쌍방이 합의한 성과는 ▲주소·생사 확인·통보 ▲서신 교환 ▲재회 ▲자유 왕래 및 재결합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등 5개항의 본 회담 의제와 주소·생사의 확인과 통보 사업을 추진할 판문점 공동 사업소와 남북적 공동안를 설치키로 한 것 등 두 가지.
그러나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정작 본 회담에 들어간 뒤 첫 의제인 주소·생사 확인 문제 부터 심각한 이견에 부딪쳐 회담은 실질적인 이산 가족 찾기에 한발짝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회담이 이처럼 교착에 빠지고만 것은 『적십자 회담은 일체의 정치적 여건을 떠나 독립적으로 추진해야 된다』는 한적의 기본 입장에 반해 북적측 에서는 적십자 회담의 순수성을 떠나 「정치적 기대」를 노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의제1항 주소·생사의 확인·통보를 위한 쌍방의 사업 방안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즉 북적측은 실질적인 본안 토의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엉뚱하게도 ▲반공법 국가보안법의 폐지 ▲동·리마다 요해 해설 인원 (사실상3만5천9백명) 파견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한적측은 ▲확인 의뢰서·회보서 교환 ▲서식 제정 등 순수한 사업 절차를 내놓고 있다.
한적측이 보안법 등은 우리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순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므로 가족을 찾기 위해 서울측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나아가 이를 실증할 수 있는 추석 성묘단 교환까지 제의했는데도 북적측이 3차 회담이래 자기들 주장의 선결을 굳이 고집하는 것은 바로 이 「정치적 기대」때문으로 풀이된다.
말하자면 적십자 회담을 통해서까지 정치적 이익을 얻어 보자는 그 동안의 기본 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이는 예비 회담에서 본 회담 의제를 놓고 북적측이 「자유 왕래」를 고집, 제6차 회담에서 19차 회담까지 똑같은 주장을 되씹다가 정치적 대화의 길을 튼 7·4남북 공동성명을 전후해서 갑자기 태도를 바꿔 합의에 응해 온 것과 관련,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북적측은 이번에도 본 회담의 실질적인 토의진전 앞에 산을 만들어 놓고 정치적 흥정을 거는 것이 분명하나 ▲환경 여건 문제는 조절위 안에서라면 또 몰라도 적십자 회담의 논란거리가 될 수 없고 ▲또 그 같은 주장은 내정간섭이며 ▲반공법은 결코 적십자 사업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적의 입장과 다짐에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 이상 그 흥정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북적측에서 남의 환경 여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도주의로 되돌아와 그들의 주장을 철회하느냐 여부가 회담 진전의 관건이 되고 있다.
북적측이 회담에 임하는 태도의 변화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나 「유엔」동시 가입도 반대 않는다는 박 대통령의 6·23평화 외교 정책 선언과 관련, 앞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한편 그 동안의 적십자 회담이 이산 가족 찾기 사업에 청신호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2년간의 적십자 대좌는 쉽게 잴 수 없는 많은 부수적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우선 남북간의 모든 현안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조절위 탄생에 산파역이 됐으며 왕래를 통해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일부지만 있는 그대로 직시, 남북 문제 해결에 초석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본안 토의 못지 않은 성과로 펑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김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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