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77세 시민구단 감독 박종환 … 박수를 치며 드는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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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최고령이지만 아직 체력이 쌩쌩하다. 2시간 정도 축구를 거뜬히 할 정도다. 경험과 연륜의 힘을 보여주겠다.”

 성남 일화를 인수해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 FC(가칭)의 초대 사령탑으로 낙점된 박종환(75) 감독의 취임 일성이다. 계약 기간은 3년. 프로야구의 백전 노장 김응용(72) 감독의 기록을 깨며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고령 감독이 됐다.

 1983년 멕시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건 벌써 30년 전이다. 그 후에도 박 감독은 93~95년 성남FC의 전신인 일화 축구단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95년 아시아클럽챔피언십 정상을 밟았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대구 FC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노장 감독의 복귀에 가슴 설레는 팬이 적지 않다.

 일화 축구단이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면 아저씨 부대가 스탠드 한쪽 구석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며 박 감독을 열렬히 응원했다. 가혹할 정도로 선수를 몰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한 카리스마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팬도 많았다. 그를 감독으로 낙점한 이재명 성남 시장은 “아직도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감독이다. 대중성이 필요한 시민구단의 사령탑으로 적격”이라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박 감독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길 바라는 기대도 높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장의 멋진 도전이라고 마냥 박수만 칠 수는 없다.

 성남 FC는 일화 축구단을 인수하면서 기존 시민구단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감독 선임 과정을 보면 기존 시민구단의 구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구단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외압에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로 단체장이 바뀌면 시민구단 감독도 덩달아 흔들린다. 심지어 구단 프런트 직원까지도 옷을 벗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25일 창단 관련 조례안이 성남 시의회를 통과한 뒤부터 성남 감독을 둘러싼 뒷말이 쏟아졌다. 수십 명의 지도자가 성남 감독 자리를 노리고 정치권에 줄을 댄다는 게 요지였다. 감독 임명 과정이 마치 지방 선거나, 총선의 공천 싸움처럼 변질됐다.

 정상적인 축구단이라면 시는 전문가 집단으로 축구단 프런트를 탄탄하게 구성하고, 이들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감독을 뽑고 팀을 운영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설령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더라도, 축구단 프런트의 신분을 지켜줘야 시민구단도 노하우를 축적하며 매년 성장해나갈 수 있다. 박 감독을 낙점하는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성남 FC의 운명도 크게 바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박소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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