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일본 교과서] 일본 문부성 '독도 개악' 지휘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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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쇼사 공민교과서

'다케시마' 화보 사진 설명
문부성서 강하게 수정 요구
"한국이 불법 점거" 설명 추가

후소샤(扶桑社)의 공민교과서에 실린 독도 관련 부분이 일 문부과학성에 의해 개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소샤의 현행 교과서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역사적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라고 본문에 기술하고 지도에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검정 합격본에선 책 앞부분에 '우리나라 주변의 문제'란 제목 아래 8개의 화보 중 하나로 독도 전경을 실었다. 거기에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라는 사진설명을 붙였다. 당초 검정신청본은 "한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로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문부과학성이 강하게 수정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순 문부과학성은 후소샤 측에 "영유권과 관련해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명확하게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검정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후소샤가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으로 바꾼 것이다.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 점거는 …불법점거이며"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은 5일 "이같이 강한 표현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자민당 간사장대리와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상이 전면에서 강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현행 교과서 '주권국가' 항목의 본문에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라고 돼 있는 부분도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우리 고유의 영토이다"로 개악됐다.

일본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관 측에 "후소샤가 다케시마 관련 내용을 수정한 것은 정부의 기존 입장에 따른 것이며 최근 시마네현 의회의 움직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최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둘러싼 공방은 올 2월 시작됐기 때문에 지난해 11월의 수정지시는 이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또 "다케시마와 관련해 일본 입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한국이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도쿄서적 공민교과서

작년 검정 신청본엔 없다가
교과서 문제 문부상 거론 뒤
갑자기 독도 내용 집어넣어

현행 도쿄서적 공민교과서에는 독도 관련 표기가 없다. 지도에도 독도는 물론 울릉도의 표기도 없다. 북방영토만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합격한 교과서는 '주권국가'항목에서 독도를 처음 표기했다. 그 옆에 "시마네현 오키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당초 도쿄서적이 지난해 4월 문부과학성에 제출한 검정 신청본에는 독도 표기와 부연 설명이 없었다. 현행 교과서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검정 신청본이 접수된 지 8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28일 갑자기 수정됐다.

도쿄서적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24일 155쪽의 '일본의 영해와 경제수역'관련 지도에 한반도 남북 경계선인 38선이 부정확하게 그려졌다는 문부과학성의 검정의견서가 왔다. 이를 고치면서 다케시마가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지도 부분에 '다케시마와 센카쿠 열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란 설명을 첨가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문부과학성이 38선 부분을 지적했는데, 도쿄서적 측이 왜 독도.센카쿠 열도의 지도와 설명을 넣었느냐는 점이다. 도쿄서적 측은 "출판사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지난해 11월 27일 "위안부 같은 표현이 요즘 교과서에서 줄어들어 다행"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도쿄서적 등 모든 교과서 출판사에 검정의견서를 보낸 지 사흘 후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알아서 잘 고치라"는 무언의 압력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나카야마는 5일 "다케시마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압력 의혹을 더해주고 있다.

●도쿄서적=일본 전국 중학교의 60.1%(공민과목)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다. "재일교포 대다수는 강제연행돼 온 사람들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아직 남아 있다. 선거권과 공무원 취업도 제한돼 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등 가장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사카서적 공민교과서

책임 교수 모르게 넣어
추가 과정 석연치 않아
출판사 "작성자 못 밝혀"

오사카(大阪)서적의 공민 교과서는 후반부인'현대의 국제사회'단원에서 독도.센카쿠 열도 등 영토분쟁을 소개한 칼럼을 이번에 새롭게 추가했다. '결정되지 않은 영토'란 제목으로 "섬나라 일본은 영토문제를 안고 있다"고 소개하면서"시마네현 해역의 다케시마는 한국도 영토를 주장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지도에선 독도가 일본 영토인 것처럼 표시했다.

현행본에도 '국가와 주권'이란 소단원 아래 영토 설명이 있으나 러시아와 분쟁이 있는 쿠릴열도 남쪽 4개 섬(북방영토) 사진만 실었을 뿐 독도 얘기는 없다.

문제는 독도 부분을 추가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현대의 국제사회' 단원을 책임진 이오키베 마코토 교수도 모르게 내용이 바뀐 것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 부분을 삽입한 뒤 나중에 이오키베 교수에게서 허락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오키베 교수는"그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새롭게 독도 관련 내용을 삽입한 배경에 대한 출판사 측의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사카서적 측은 "당시 한국에서 발행한 독도 우표가 한국과 일본 내에서 큰 쟁점이 되는 등 뉴스성이 높아져 다케시마를 넣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고는 2003년 11월 완성됐다. 독도 우표 문제는 이보다 두 달 늦은 지난해 1월에 불거졌다.

오사카서적 관계자는 "다케시마 부분을 누가 작성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은 "2003년 11월께 최종 원고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다케시마 부분에 대해선 저자들이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사카서적은=전문가들은 "오사카서적의 공민.역사 교과서는 우익사관과는 거리가 먼 건전한 교과서"라고 말한다. 오히려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민 교과서엔 전쟁 포기를 선언한 일본 헌법 9조(평화조항)를 별도 삽화와 함께 3쪽에 걸쳐 설명하면서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이 취직 등 불이익으로 본명을 쓰지 못하는 여건도 비판했다. 현행판의 채택률은 공민 11%, 역사 14%다.

도쿄=예영준.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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