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9대 국회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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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9대 국회는 기능 면에서나 의석의 분포에서 종래의 국회와 모습을 크게 달리했다. 우선 선출 방식에서 의석의 3분의 2는 지역구 의원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국민회의에서 선출된다.
지역구 의원의 의석 분포는 공화당이 절반인 73석, 신민당이 52석, 무소속 19석, 통일당 2석이다.
지역구 의석으로 보면 통일당은 단 2석뿐인데다 당 수뇌급이 모두 탈락해 원내 야당 진출은 좌절됐고, 무소속은 1석만 보태면 교섭 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이 지명「케이스」의석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체로 공화당 내지 친여 성향의 사람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전제에서 봐도 의회 내 분포는 공화·신민·무소속으로 3분된다.
무소속 19석은 친여 9, 친야 9로 대충 나뉜다. 새 헌법은 종래와 달리 의원의 당적 변경이 자유로와 무소속 중에선 신민당이나 공화당에 입당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민당은 이미 입당을 원하면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공화당은 당장 무소속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국민회의에서 선출되는 의원 중 일부가 무소속과 합쳐 제3의 교섭 단체를 구성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비록 무소속이 별도 교섭 단체를 구성한다해도 신민당이 의회 내 유일 야당으로서 9대 국회도 양당 체제가 유지된다.
야당인 신민당의 52석은 의원 정수 2백19석의 3분의 1에도 미달한다. 그 위에 유신 헌법에 따라 의회의 기능은 종래에 비해 폭이 좁고 새 국회법에 의해 야당의 활동에도 제약이 주어졌다.
헌법이나 새 국회법은 의회의 능률적인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회의의 발언 자수, 발언 시간, 의사 일정의 작성, 상임위의 배정이 모두 의장 직권으로 넘어갔다.
국회의 연중 회기가 1백50일로 제한됐고 소집 요건도 4분의 1이 3분 1로, 국무위원 출석 요구는 원의 결의로만 가능하게 됐고, 법안도 일반 법안은 20인,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은 50인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법규정에 따라 신민당의 52석이 단독으로 가능한 것은 의안의 제안권뿐이다. 야당의 이런 능력의 한계 때문에 신민당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국회는 여당의 주도하에 운영될 수밖에 없다.
신민당이 스스로의 이런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새 체제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임한다면 9대 국회의 운영은 여야의 타협 아래 여당에 의한 주도가 가능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이루어지려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여야의 타협 태세가 갖추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야당은 문제를 합리적인 선에서 제기하고, 여당은 야당이 엄선해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대폭적으로 동의 할 수 있는 폭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에선 이런 것을 기대하기에 어려운 면이 많다.
우선 야당은 선거에 임했지만 야당의 투표 참관마저 허용되지 않았다는데서 선거의 공정에 회의를 갖고 있다.
특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의 전례 없는 여당의 놀라운 진출에 대해선 납득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 입장에서 볼 때 도시를 잃는다는 것은 그들의 존립 기반을 잃은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야당 퇴조를 수긍하고 들어간다면 잃은 기반을 되찾기 위해 또 이를 행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당에 대한 불신에서 여당과의 대화에 거리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제기될 문제에서도 여야간의 거리가 짐작된다. 10·17 국회 해산 후 국회 기능을 대행해온 비상 국무회의는 그동안 2백 건에 이르는 각종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했다.
신민당은 이 법률을 모두 재검토 해 국회법을 비롯한 많은 법률을 개폐할 것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신민당은 또 헌정의 민주화도 공약했다. 이 문제는 당장 제기하지 않더라도 임기 중 어느 때인가는 제기될 것이다.
야당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여당은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여야의 폭 넓은 대화가 쉽사리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8대 국회에서 야당은 반수에 접근하는 의석을 갖고도 효율적인 의회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 위에 심각한 내홍을 일으켜 의회 해산 직전에 양분됐다.
조각난 상태에서 선거에 임한 야당은 많은 곤란에 부닥쳤고 분당해간 쪽인 통일당은 선명성을 내세웠으나 대패했다.
이런 것을 반성할 때 야당은 소수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일어날 것이며, 대여 자세에 대한 새로운 자세와 전략을 모색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소수의 야당은 활동의 제약까지 겹쳐 그 어느 때보다도 무력하고 스스로도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강경할 수밖에 없는 입장의 다른 한면에선 유진산씨를 중심으로 하는 유연한 자세의그룹도 있다.
이런 여건 하에서 일단 국회는 여당의 주도하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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