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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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햇볕이 따사로운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아빠를 따라 외출했던 길에 아빠가 나에게 일기장 한 권을 선물로 사주었다.
교편을 잡고 있는 아빠는 일기를 쓰는 습관만큼 좋은 것이 없다면서 올해부터라도 빠짐없이 쓰라고 말했다.
사실, 학교시절엔 없어서는 안될, 매일매일 다정한 벗처럼 일기를 써 왔지만 결혼 후론 통 써보지 못했었다. 이렇게 다시 일기장을 손에 쥐니 흐뭇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조용한 시간에 일기장을 대하면 피로했던 몸과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가 하루 겪었던 일, 생각하는 것들을 적다보면 즐거움과 함께 마음이 가라앉는 그 기분은 일기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체현했을 일이리라. 하루 중 가장 참되고 보람 있는 시간이 아닐 수가 없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그 호젓한 즐거움은 아이들의 웃음과 재롱 속에 잊혀져간 셈이다. 새삼스럽게 변화된 오늘의 내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꿈 많던 지난날엔 작은 가슴에 그리움을 담고 먼 세계를 동경하면서 정말 이 작은 가슴이 터질 듯 부풀기만 했었지.
그러나 이젠 그 고운 꿈들을 「베일」속에 묻어둔 채 오늘을 살고있지 않은가. 현명한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기만을 노력하면서 그런 대로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해부터는 다시금 새로운 꿈을 키우며 잃어진 날들을 이 일기장에 꼬박꼬박 수놓아야 하겠다.
뒷날 내 귀여운 아이들의 좋은 거울이 되기 위해서라도 내 생활을 충실하게 엮으면서 인내와 노력과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하루하루 속에 숨김없이 담을 것을 생각하니 더없이 이 일기장 선물이 소중하고 보람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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