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일의 북경접근 경쟁 속|대만의 오늘과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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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냉전시대가 낳았던 허구의 강대국 대만은 지난해「유엔」에서 축출된 이래 급격한 사양의 길을 걸어왔다. 정권유지의 사활적 요소였던 미·일 양국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북경접근을 다투고 국제정치무대에서도 기아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장개석 정권의 이와 같은 전락「템포」에 비춰 지극히 불길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실 미·일의 정책변화 추이나 중공의 적극화해 가는 해방공작, 그리고 대만자체가 안고 있는 내부모순 등을 살펴보면 장 정권에 긍정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미·일·중공·대만의 4개국이 만들어놓은 역관계의 궤적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경우에는 얘기가 훨씬 달라진다. 이를테면 4개의 부정적인 요소가 끊임없이 타격을 가함으로써 장 정권이라는 팽이는 오히려 안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가장 적절한 증거가 바로 얼마 전에 대만을 방문했던 「시이나」특사의 경우이다.
외신보도를 평면적으로만 받아들일 경우 「시이나」는 「다나까」방중에 따른 일본측의 정책변경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했다. 대만은 「단교」혹은 이에 준하는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히 반발했고 국내의 일본인자산을 조사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까지 보였다. 「닉슨」의 북경방문에 대해서는 「장경자강」「처변불경」자세를 보였던 장 정권이 유독「다나까」 방중만을 물고 늘어진 것은 언뜻「아이러니」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아이러니」야말로 「팽이의 원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인이다. 이것은「다나까」의 자세와 「닉슨」의 그것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만개입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69년11월 「사또」-「닉슨」 공동성명에서 이른바「대만조항」을 삽입했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대만의 안보』를 일본안보의 긴요한 요소로 인정했던 이 조항은 곧 사문화되었다. 이것은 미국 측이 대 중공접근 정책을 적극화한데서 비롯된 부산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또」정권의 외교노선은 여전히 대만우위의 궤도 위에서 운영되었고 그 결과 26차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을 젖혀놓고 반중공표 단합에 앞장섰다.
그러나 『의리인「사또」』를 받아들이기에는 일본국민들이 너무 편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닉슨」이 기습적으로 북경방문에 나섰을 때 이와 같은 편협성은 일종의 분노로 변했었다. 「다나까」내각의 대 중공접근정책은 이와 같은 배경 하에서 수립되었으므로 그 적극성 속에서 일종의 반작용적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예컨대 「닉슨」의 방중이『양국의 관계정상화에 필요한 기초공사』로 끝난 데 반해 「다나까」는 일거에 국교정상화률 이뤄놓으려 한다. 따라서 대만정부가『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가정 하에서 맺었던 지금까지의 모든 조약도 폐기할 작정인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장개석 정권의 양대 「패트런」인 미·일의 차이가 드러난다. 즉 미국은 중공과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되 『우방을 희생하지 않고』『방위공약을 지킨다』(닉슨의 말)고 말한 데 반해 일본은 책임의 상한선을 그 이하로 잡고있는 것이다.
중공과 국교정상화를 이룬 후의 일본의 대 대만정책은 이른바 역정경 분난 원칙이라는 테두리를 취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장개석 정권을 유일·합법 부로 인정하면서도 중공과는 정정분란 원칙에 따라 실질적인 통상관계를 유지했듯이 앞으로는 이 정책을 거꾸로 대만 쪽에다 적용한다는 얘기이다.
「오오히라」외상이 『대만과 단교하더라도 경제·문화교류는 계속될 것』이라고 못박은 것은 이러한 이중구조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이상의 분석을 입체화하면 미국은 적어도 역정경 분난 원칙 이상의 무엇을 장 정권에 약속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닉슨」의 북경방문을 잠자코 지켜보던 대만이 새삼스레「다나까」의 방중을 문제삼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자본투자가 최근 들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시사를 던져준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미·일의 이러한 보조불일치가 결과적으로 장개석 정권의 유지에 플러스 작용을 하고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응하는 중공 측의 응수가 차라리 봉쇄정책의 시대보다 더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공은 무력에 의한 「대만해방」을 이미 포기했고 평화공세의 방법도 과거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졌다.
대만의 탁구「팀」을 『중화인민공화국대만성 팀』으로 인정하겠다는 제의, 화교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하향응에게 파격적으로 융숭한 장례식을 치러준 것, 국부여권을 소지한 화교들의 입국허용 등이 그 증거이다.
따라서 대만을 둘러싼 미·일·중공의 역함수관계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장 정권의 유지 쪽으로 작용하게 될 것 같다. 중공은 물론 미·일 양국의 외교정책변화가 「허구의 강대국」너울을 벗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장 정권의 붕괴현상이라기보다 냉엄한 현실의 인정이다.
문제가 있다면 현재까지는 장개석 정권이라는 팽이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치던 미·일·중공가운데 어느 하나가 팽이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평형을 잃을 정도로 타격을 가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 확실한 것은 「영원히 돌아가는 팽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홍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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