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인파 없는 담담한 배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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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판문점=임시 취재반】『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오는 10월에는 평양에서 만납시다』-. 4박5일의 서울 회담 일정을 모두 마친 북적 대표·자문위원·수행원·기자 등 대표단 일행 54명은 16일 상오 11시5분 판문점을 통해 사천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저들의 북으로 사라져 갔다. 귀로에 오른 일행은 배웅 나간 우리측 대표단과 이별의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웃음을 띠기도 했으나 이내 표정은 어딘지 개운치 않은 듯 씁쓸해 보였다. 북적 대표 일행이 「코스모스」가 여전히 핀 통일로를 따라 「북의 길」에 올랐을 때, 연도의 시민들은 그들이 서울에 올 때와는 달리 손을 흔들거나 환영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아 냉담한 반응을 비쳤다.

<판문점>북적 대표들이 떠나던 날
이날 판문점에 도착한 북적 김태희 단장은 「자유의 집」 대기실에서 북적 측 상설 연락 사무소를 전화로 불러 『김태희입니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고 말한 다음 한적 대표단·자문위원 일행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이범석 수석 대표가 환송 인사를 하는 동안 한적 김준엽 자문위원은 신의주 고보 동창인 북적 자문위원 김성률에게 『다른 동창들이 나더러 너만 가서 동창을 만나 보기냐고 하는 항의도 받았다』면서 『어서 우리가 자유롭게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이 수석 대표가 윤기복 자문위원에게 『서울에서 여러 가지 실례가 많았다』고 인사하자 윤 자문위원은 『정말 애썼다. 한달 후 평양에서 만나자』며 악수를 나누었다.
윤은 54명의 이화여고 학생이 북적 대표에게 각각 안겨주는 꽃다발을 받으며 『어느 학교 학생인가』물어 2학년 김영현 양이 『이화여고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정 교장 선생의 제자구먼』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북적 자문위원 김병식은 이 수석 대표에게 『감격적이었다. 서울을 안 보고도 서울을 선전했는데 서울을 보고 가니 더욱 잘 선전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다음 만날 때는 더욱 젊어지기 바란다』며 악수를 나누었다.

<시민 환영 감사한다 여 대표가 소감 말해>연도
북적 대표의 홍일점 이청일은 평양으로 돌아가는 심정을 묻자 『지난 12일 서울에 도착할 때 연도 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해준 것을 다시 감사한다』고 말하고 『적십자인으로 성의를 다해 적십자 회담의 성공과 조국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북적 대표 일행 54명은 16일 상오 9시40분 숙소인 「타워·호텔」을 떠났다. 북적 대표단 일행이 경찰 선두 차의 안내로 광화문을 지나 중앙청 앞으로 해서 사직 「터널」 쪽으로 들어갈 때 시민 회관 쪽과 맞은 편 국제 전신 전화국 쪽 인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극히 적은 행인들이 지나 다녔으나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북적 대표단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와는 대조를 보였다.
사직 「터널」 앞길에서 윤기복 북적 자문위원이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으나 행인들은 씁쓸히 웃기만 했다.

<『인간이 덜 됐다』 평|시민이 북적 대표에>
행인 김정치씨 (66·서대문구 대조동 204) 는 『정치 선동만 하는 저 친구들 기분이 나빠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불광동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박정윤씨 (40·노동·서대문구 현저 2동 산 5)는 『처음에 올 때는 서로 통하는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인간들이 돼 먹지 않았다. 가버리니 이제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연신내 노인정으로 가던 홍창식씨 (61·대조동 38)도 『무사히 다녀가는 것만이 천만 다행스럽다』고 했다.

<경기 배지를 선물|윤에, 학교 사진도>타워·호텔 출발
16일 상오 9시3분 숙소인 「타워·호텔」을 출발,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경기고 동창회는 박준규 한적 자문위원을 통해 경기고 동창회 「배지」와 학교 전경이 든 사진 5, 6장을 동문인 윤기복 자문위원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다.

<내 이름 끝자는 희|김 수석이 시정>
한편 김태희 북적 단장은 서울을 떠나면서 성명을 발표하기 전 우리측 기자들이 『희자가 밝을 희자냐』고 묻자 『북한에서는 한자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북적 윤기복 자문위원이 『바른대로 대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김 단장은 『불시 변에 기쁨 희자다』라고 자기 이름을 댔다.

<부모 안 만나고 떠나|조선 통신 이형구>
북적 대표단의 수행 기자로 서울에 왔던 재일 조선 통신 사장 이형구가 서울에 있는 부모 등 가족을 만나지 않고 16일 북으로 돌아갔다.
이는 서울에 오던 날 『가족들을 만나 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복잡해진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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