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제26화>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173)|한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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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8년께로 기억되는데 안암동에서 일가족 5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가끔 빚어지는 이 비슷한 사건의 효시였다고 생각된다.
사건의 내용은 별안간 닥쳐온 가난에 쪼들리던 한가족 다섯 식구가 음독 자살하면서 가장이 외출한 대학생 아들에게 약물「컵」과 함께 『가족이 모두 가니 너도 따라 오라』는 유서를 남긴 것이다.
의장실에서 이 사진을 보도한 신문을 본 만송(이기붕 의장)은 『에이, 에이』하며 혀를 찼다. 이 의장이 언짢은 얼굴로 앉아있는데 자유당의원 몇 명이 들어왔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느냐고 의원들이 묻자 이 의장은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이기붕이는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다가도 죽지 못한 못난이인데 이런 이는 얼마나 잘난 사람이면 이런 엄청난 일을 결행할 수 있었겠소. 이런 이에게 큰 일을 맡기면 잘 해낼 텐데 세상이 몰라주어 큰 일을 못하고 갔구료.』
만송은 좌중이 아주 엉뚱한 논리를 펴더니 자기가 고생하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만송은 어려서 서울로 오기 전 충북 괴산에서 자랐다. 괴산에서 살 때 어린 만송은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어 항상 허기져 있었다. 이웃에서 방아 찧는 소리나 보리 삶는 냄새가 넘어오면 『엄마 배고파, 배고파』하고 울었고,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냄새가 안 들어오도록 문을 닫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냄새라도 맡게 문 닫지마』하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만송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뒤 일제말기에도 무척 고생을 겪었다.
그가 국일관에 취직하게 된 것도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창 곤궁해 저녁을 굶고 부인과 강희·강석·강욱 3남매가 잠든 것을 보니 눈물이 쏟아져 죽고만 싶더라고 했다.
『그때 내 주머니에는 나 혼자 먹으면 죽을 정도의 수면제는 마련돼 있었어요. 에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을 떠놓고 수면제를 먹으려 하니 자고있는 저놈들이 내 장사지낼 돈이 없어 얼마나 고생을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 모두 때려죽이고 죽을까 생각하니 용기가 나지 않습디다. 그래 멀거니 앉아 울기만 하다가 마누라를 깨워 같이 붙잡고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은 얼마나 깨끗이 죽은 겁니까.』
좌중이 침통해져 정치얘기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만송은 이 대통령을 뵐 「스케줄」이 있어 곧 일어났다. 만송은 이 신문을 쥔 채 경무대로 들어갔다. 이미 이 의장은 건강이 좋지 않아 누가 부축을 해야만 보행이 가능할 때였다.
내가 이 의장을 부축해 경무대 접견사무실로 들어간 뒤 이 대통령도 신문을 손에 들고 이 방에 들어섰다.
이 대통령은 이 의장을 보더니 앉지도 않은 채 『신문 읽었어』하고 물었다.
『예, 읽었습니다』
『안암동에서 사람 죽은 거 읽었느냐구.』
『그래서 저도 이렇게 신문을 가져왔습니다』
『이거 이승만이가 죽인 거야. 왜놈들의 압제 하에서도 살아난 사람을 이승만이가 죽였어. 나도 정치를 하느라고 했는데.』
이 박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번쩍였고 들어오기 전부터 마음이 좋지 않던 이 의장도 눈물을 떨구었다.
두 분은 모두 눈물이 글썽해 2, 3분간이나 선 채로 말이 없었다. 대통령이 서있으니 이 의장이 앉을 수가 없고, 그러니 나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두 분은 앉은 후에도 한참을 침묵했다.
적어도 이때 이 박사의 눈물은 전적으로 애국 애족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단언하고 싶다.
이 박사는 이렇게 「센티멘털」한 면이 있는가 하면 분방한 「위트」와 해학이 있었다.
얘기가 거슬러 내가 공군 대령일 적에 이 대통령이 내외기자와 회견할 때의 일이다.
이 박사는 그 회견에서 외국기자 위주로 영어를 사용했다. 우리기자를 위한 통역을 내가 맡았다. 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커피」가 나왔다.
그런데 우리 기자들이 유난히 「커피」에 설탕을 많이 탔던 것 같다. 하도 설탕을 퍼부으니 외국 기자들의 시선이 모두 설탕을 타는 우리 기자들의 손으로 쏠렸다.
그러자 이 박사는 외국 기자들에게 『Well, Your people use sugar for coffee, but we use coffee for sugar. (당신들은 커피에 설탕을 타지만 우리들은 설탕 먹는 재미에 커피를 마신다)』라고 「조크」를 던져 폭소가 터졌다.
언젠가 「마담」이 우리말을 배워 조금씩 우리말을 쓴다는 소문이 난 일이 있다.
그런데 경무대에서 열린 국무회의가 끝난 뒤 나오는 장관들이 모두 웃느라 야단이었다.
어느 장관에게 물으니 「마담」의 우리말 때문이었다. 그날 따라 「마담」이 장관들과 만나 우리말을 쓰는 데 그것이 모두 『대가리 아프다』『주둥이가 헤프다』『배때기 부르다』는 식이었다.
장관들은 허리를 잡았다. 의아해하는 「마담」에게 어느 분이 『상스러운 말만 쓰시는데 누가 가르쳤습니까』고 물었다.
모두 웃는 이유를 알아챈 「마담」은 『이 박사가 가르쳤다』고 대답했다. 「마담」을 곯린 이 대통령은 시종 빙그레 웃고 있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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