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서 벽화 고분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는 북한이 옛날 문화재들을 잘 보호하고 또 관리하고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다. 종교를 배격하는 공산주의자들인 만큼 불자의 사찰들을 보호할 까닭이 없을 것 같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북한의 각 명산에는 고찰들이 많다. 그것들이 잘 관리되지 못하여 모두가 손상되었다면 다음 우리가 북한에 가서 손상된 사찰들을 대할 때 우리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역사적 유물들까지 종교적 문화재와 같이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실에 치중하는 그들이라 고적들까지도 그 관리가 소홀할 것 같은 걱정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기우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내 고향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강서의 고구려 삼묘의 현황이 내게는 걱정이 된다. 이것이 남한에 있다면 사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을 것이다.
관광원으로 세계에 선전될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에는 왕릉이 많다. 그러나 고구려 삼묘처럼 큰 왕릉은 하나도 없다. 부여 근처에서 백제고분을 본 일이 있지만 그것도 크기로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뿐더러 그 현란한 벽화를 어디다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에서 강서읍을 지나 기양역까지 50리 길을 걸어가 기차를 타곤 했다. 그런데 삼묘는 강서읍에 이르기 5리 채 못미처 있었다. 그래서 방학과 개학 때마다 삼묘 앞을 지나다녔지만 그 고분을 볼 때마다 저것이 무덤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품곤 했었다.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과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름이 1백50척, 높이가 29척이라니 무덤이라기 보다는 산이요, 그 내부를 궁전이라 할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그중 하나만은 조금 작았다. 큰 무덤 가운데 하나에는 출입문이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길에서 50여m 떨어져있는 무덤의 출입문은 길가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현재 문화주택의 출입대문보다 작지 않은 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출입문안의 내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사진으로 누구나 보았을 그 유명한 벽화가 내부에 가득 그려져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4면의 벽과 천장이 모두 벽화로 차있고 그 그림들이 고구려의 미술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원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있다.
일제 때에는 그 무덤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그 근처에서 살고있지 않았다. 남한의 왕릉에는 묘 참판들이 능 근처에 살고있었다. 능 바로 앞에는 사당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제사도 올렸다.
그러나 강서 삼묘는 허허 벌판에 무덤이 서 있을 뿐 그 근처에는 집 한 채가 없다. 군청직원이 무덤의 열쇠를 보관하여 출입을 단속했을 정도의 관리에 지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공산주의자들도 삼묘의 보관을 소홀이하여 역사적 가치가 빛나는 그 사적을 방치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우리 학자들이 삼묘를 찾아가 그것을 연구하고 나아가 그 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도 통일만 되면 어디보다도 먼저 고구려 삼묘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