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가 정책의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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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지난 68년부터 계속해온 고미가 정책을 일시 중단할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최근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우리 나라의 당면 경제정세를 분석·평가하는 가운데 물가와 환율안정을 위한 반「인플레」정책을 권고하면서 고미가 정책의 중단을 종용한 것과 관련하여 양정에 대한 정부의 이 같은 검토가 상당히 구체성을 띠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관계 당국자의 해명으로는 지난 68년이래 실시해 온 정부의 고미가 정책이 그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이이상의 쌀값 인상은 「인플레」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올해 추곡매상가격인상은 5%∼10%선으로 낮출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더욱 심각해진 경기 침체는 세입에 큰 질차를 가져옴으로써 하반기에 상당한 적자재정집행이 불가피한 실정에 있음은 사실이며 때문에 추곡매상가격을 억제하여 재정 「인플레」의 요인을 누증시키지 않으려는 정책 당국의 고충을 짐작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의 고미가 정책에 따라 모처럼 농민들의 증산의욕이 높아지고, 이것이 미곡증산에 반영되기 시작한 징조가 보이고 있는 이때 올 추곡매상가격의 인상폭을 크게 낮춘다는 것은 자칫 교각살우의 위험을 가져올지도 모를 정책변경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최근 수년동안 실시해왔던 추곡수매가격의 인상률을 살펴 볼 때 정부가 본격적인 고미가 정책을 집행하기 시작한 것은 70년의 17%, 71년 35.9%, 72년 25% 등으로 고작 3년 전부터이므로 이런 정도의 지속성을 가지고 고미가 정책의 효과 운운한다는 것은 작년도의 작황과 올해의 방대한 외곡도입을 굳이 문제 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별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입론이다.
양곡가격정책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을 단순히 농민의 소득증대에만 한정시켜서 보는 안목에서보다도 국제수지의 개선, 지역간 및 소득간의 격차 해소 등 경제·사회정책의 기본과제와 연관시킨 보다 높은 차원에서 대처해야한다는데 있다.
우리 나라 국제수지구조의 치명적인 취약점이 연간 2억5천만 달러 수준으로 고정된 외곡도입에 있음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농민의 생산의욕을 진작시켜 미곡증산의 효과를 기약하기 위한 고미가 정책의 일관성 있는 지속은 국제수지개선과도 직결될 정책과제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3차 5개년 계획에서도 주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지역간·계층간 소득격차의 해소는 당면한 경제·사회적 정책이념의 구현이란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구조적인 경제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국내시장의 확장이란 측면에서도, 그 기관효과를 정당하게 파악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고미가 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이 같은 문제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올 추곡매상가격을 실질적인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낮은 선으로 억제함으로써 과거의 저미가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고미가의 지속으로 파생될 재정적 애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이 옳으냐 하는 선택의 향배는 자명할 것으로 믿는다.
추곡매상을 위해 살포하게된 자금의 대부분은 이듬해 정부미 판매대전으로 환수되는 것이므로 비록 그것이 재정「인플레」요인을 조성한다 하더라도 다분히 계절적인 변동요인이다. 연말여신한도와 통화신용정책면에서 국제금융기구와의 협의 등 어려운 면도 없지 않겠으나 기술적으로 재정운영의 조화를 꾀함으로써 반드시 해결 못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체 농민과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고미가 정책의 후퇴를 재고하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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