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 35도6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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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땅이 끓고, 하늘이 타오르고 있다. 열기가 모든 것을 녹이듯 화끈거린다. 마치 용광로 속과도 같은 더위가 며칠씩이나 계속되고 있다.
여름의 가장 더운 때를 영어로는 Dog Days라 한다. 1년을 통해서 뉴스감이 제일 없어서 신문기자들이 고생하는 때이기도 하다.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뉴스 거리가 생길 턱이 없다. 자연 싱거운 기사들만이 나온다. 그래서 「실리·시즌」(Silly Season)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영국사람들이 못견디겠다는데 더위란 고작 섭씨27도를 좀 넘을까 말까 하는 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어제 서울의 기온은 35도6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러한 더위가 요 며칠 전국적으로 계속하여, 어제 광주지방은 36도라는 광기까지 부렸다.
정말 미친 날씨다. 정상적인 사람의 체온은 36도와 37도 사이다.
그것과 맞먹는 외기의 온도 속에서 사람들이 미칠 지경이 안될 까닭이 없다.
광서는 이따금씩 생기는 현상이다. 세계에서 최고의 더위를 기록한 것은 「아프리카」의 「리비아」에 있는 「아지지아」의 57도8분이었다. 1922년7월이었다. 유럽의 최고기온으론 1881년에 「스페인」의 「세빌랴」에서 50도였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1913년 「죽음의 계곡」이라는 곳에서 56도7분까지 수은주가 올랐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42년에 대구지방에서 기록된 40도가 최고 기록이 된다. 서울의 최고기온은 1939년과 43년에 두 번 각각 38도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최근에 35도6분을 수은주가 오르내린다고 새삼 놀랄 일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한 것만은 틀림없다.
장마가 일찍 걷힌 것도 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더욱 이상스러운 것은 대구와 서울과의 기온 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곳은 으례 대구로 되어 있다.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서울이 36도를 오르내릴 때 대구는 33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 기온 같기만 하다. 세계 여러 곳에서 폭서로 시름하는 것도, 지난 두어달 동안 폭우의 피해가 많았던 것도, 모두 대기와 바다의 오염에서 생긴 기상이변 탓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처음으로 우주를 난 「아폴로」비행사들이 「푸른 지구」를 보면서 그 둘도 없이 낙원같은 곳에서 사는 행복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와 같은 광서에서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서운 지구이변을 일으킨 최대의 용의자는 바로 인간들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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