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념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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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소련 시절 공산당 이념의 최종 해석권은 당 이념담당 서기에게 있었다. 비록 공산당 서기장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이념담당 서기의 해석은 그를 견제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특히 레닌이나 스탈린처럼 권위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도자가 사라진 후 이념담당 서기의 해석은 더 절대적이 됐다. 한번 그에 의해 수정주의자.체제 파괴론자로 몰리면 정치투쟁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역대 이념담당 서기 중 가장 유명했던 이는 수슬로프였다. 그는 브레즈네프 시절 '크렘린의 추기경'으로 불리며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공산당 이념과 소련 체제를 수호했으며 탁월한 해석력을 과시했다.

수슬로프 사망 후 이념담당 서기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신 크렘린에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이념의 해석자이자 집행자의 역할을 떠맡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념 해석과 정책 집행에 있어 과거 어느 누구보다 더 큰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과거 서기장에 비해 그는 젊었고 개혁적이었으며 토론에 능했다. 현장을 자주 찾았고 정치토론의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대중들은 열광했고 서방은 환호했다. 하지만 보수파와 골수 공산당 지지자들은 당혹했다. 그러나 누구도 고르바초프의 이념 해석권과 행동에 대해 권위있게 대항하지 못했다.

예고르 리가초프 이념담당 서기가 이를 수정주의로 공격하고 나섰지만 그에겐 수슬로프와 같은 축적된 권위가 없었다. 또 그동안 갇혀있던 개혁에 대한 열망이 응축된 힘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을 시대착오적 수구주의자로 낙인찍었다.

대신 고르바초프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로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계몽 전제군주'가 됐고 소련 체제가 해체된 후엔 현실을 몰랐던 '이상주의자'로 불렸다.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내 좌파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보수화 플랜인 '신노동당'정책으로 정권을 잡았다. '늙은 제국'영국에서 파격과 활력을 앞세운 그의 개혁은 높은 인기를 끌어 '영국의 케네디'로 불렸다. 하지만 요즘 그는 조지 W 부시의 전쟁정책을 무조건 추종한다고 해서 '부시의 푸들'로 불리며 인기도 바닥이다.

당내에서도 이념을 팔아먹었다는 비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처럼 개혁과 정치인들의 이미지와 운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명분과 시대감각이 사라지면 그가 형성한 이미지와 지지는 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