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소집과 여당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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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은 야당이 단독 소집한 두 번째 임시국회가 무위로 폐회하자 다음 국회소집문제를 놓고 정치적 「머누버링」을 시작했다.
6월에 임시국회를 연다느니, 9월 정기국회 때까지 국회를 열 거리가 없다느니, 국회법을 개정해 의원들의 본회의발언시간을 제한해야 한다느니 갖가지 「애드벌룬」을 띄운다. 당기 고 늦추는 작전을 펴고있는 것이다.
공화당의 이 「머누버링」은 단기적으로는 8일부터 시작된 여야총무회담에서 야당의 조기국회소집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 그러나 야당의 전당대회, 앞으로의 국회운영 및 정치앞날에 대한 장기적 배려가 깔려있는 듯 하다.
『9월 정기 국회 전에 임시 국회를 열어야 할만큼 시급한 안건이 없다』(현오봉 원내총무). 『정기 국회 전에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 시기는 6월이 될지 7월이 될지 모르겠지만…』(백남억 당의장). 『정기 국회 전에 임시국회는 없을 것이다』(구태회 정책위원장).
현 총무가 지난3일 야당이 단독 소집한 80회 임시국회 폐회를 앞두고 임시국회가 급하지 않다는 발언은 하기까지는 공화당이 6월에 국회 문을 열려하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야당이 지난1월79회 임시국회를 요구 할 때 공화당은 3월 소집을 주장하다가 막상 3월에는 다시 6월로 후퇴한 전력이 있었지만-.
어쨌든 현 총무의 3일 발언에 이어 백 당의장은 이를 뒤엎는 듯한 얘기를 5일 용인의 식목장소에서 했고, 구 정책위 의장은 6일 진주에서 백의장의 발언을 다시 뒤집었다.
집권당 고위당직자들의 이런 엇갈린 발언은 교묘하게 의도된 것이라 기보다는 당 방침의 신축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현 총무의 발언은 여야절충을 의식한 다분히 전술적인 냄새가 짙지만, 백 당의장과 구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당내의 두가지희망과 성향을 각기 반영하고 있다.
공화당 안에는 비상사태 하에 정부는 새마을운동 등으로 바쁜데 걸핏하면 임시 국회를 열어 국사에 비 능률을 가져오는 풍조는 고쳐야 한다는 주장과,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기피해 스스로 비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공존한다. 그러나 6월쯤 되면 이런 두 가지 입장은 그때 열릴 국회가 띨 정치 색의 항도에 대한 전망에 따라 한 방향으로 여과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5월31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시국관을 가진 당권이 정립되어 어떻게 정국을 몰고 나가려 하느냐에 6월 국회소집여부가 좌우된다는 얘기다.
야당의 새 지도체제가 현실 긍정적일 경우 6월 국회가 쉽게 열린 것이며, 현실부정이어서 강한 경치공세를 펼 전망이면 6월 국회는 유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금 공화당의 간부들이 어떤 얘기를 하든 실질적으로 여야가 참여할 다음 국회는 신민당의 전당대회결과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국회 문이 언제 열릴지 유동적인데도 공화당일각에선 앞으로의 국회를 강력히 의식한 발상이 새어나오고 있다. 구 정책위의장이 진주에서 제기한 의원발언시간 제한 검토구상이 그것.
구 의장은 국회와는 멀리 떨어진 진주에서 영국의 예를 들며 우리국회의 비 능률을 개탄(?)했다고 한다. 『영국에선 의원의 본 회의 발언시간이 30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일 문 일 답 식 의사진행을 해. 무척 능률적이다. 우리도 외국의 의회제도를 돌아본 의원들로 국회법 개정연구위원회를 만들어 국회가 열리면 반영해야겠다.』
의원발언시간제한 문제는 3대 국회 때부터 여당에 의해 그 필요성이 간헐적으로 거론돼 온 숙제 같은 것이다. 평상시에는 여야가 양해만 되면 발언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원발언시간 제한은 야당의 의사방해를 봉쇄하려는 데 정의가 있다. 자연히 야당은 의사의 발언시간 제한움직임에 언제나 본능적으로 반발했다.
하필 이시기에 공화당이 이 문제를 제기한 속셈은 복잡하다. 첫째로 실현되면 야당의 오랜 무기를 하나 없애는 것이고, 둘째로 실현되지 않더라도 야당에 대해 의사방해를 할 경우 결과가 좋지 않다는 심리적 압박을 주어 자제를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것. 또 의원발언시간 제한을 꼭 하려면 지금이 호기라는 「타이밍」판단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년 말부터 한동안 활발히 논의되다 갑자기 동면한 대선거구제도 개혁안이 요즘 다시 관심권으로 부상했다. 백 당의장과 구 정책위의장은 각기 대구와 진주에서 선거제도개혁 추진결의를 밝히면서 처리시기를 9월 정기국회로 잡았다.
선거제도 개혁은 장기적인 정치앞날에 대한 전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이러한 선거제도개혁은 한때 4인체제로 불리었던 당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왔다.
당직자들은 선거비용과 타락이 줄고 집권당이 안정세력을 가질 수 있는 제도란 당 고위층의 과제실정에 대한 해답으로 대선거구제개혁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내에는 대선거구제가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이 못된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때 활발하던 선거제도 개혁논의가 한동안 숙여든 연유를 이런 당내견해차이에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대선거구를 해답으로 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뒷전에서는 자기네 견해가 더 인정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두 고위당직자의 발언은 청신호가 대선거구제추진으로 기운다는 새로운 징조를 느낀 데서 나온 합창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집권당 안에선 대선거구제개혁안에 대한 설득이 활발해 질 것이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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