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버리고 다시 잡은 붓 … 귀농 전·후를 그린 임동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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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임동식, 귀농 당년, 74.5×104㎝, 캔버스에 유채, 2009∼2011. [사진 이화익갤러리]

들판을 바라보며 쪼그려 앉은 남자의 뒷모습. 머리 위 우중충한 잿빛 하늘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임동식(68)의 ‘귀농 전년’이다.

 충남 연기군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거쳐 독일 함부르크 자유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거기서 10여 년을 지낸 임씨가 1990년대 초 귀국해 서울 아닌 공주 원골에 자리잡을 때 이런 심경 아니었을까. 작가의 일기장 같은 그림은 이렇게 이어진다. 같은 배경의 또 다른 그림에서 남자는 이제 단단히 땅을 딛고 서 있다. 그 앞에 싹트고 있는 들판이 환한 하늘을 이고 “잘 왔다” 하는 듯하다. ‘귀농 당년’이다.

 지난 30여 년 사운드 아트, 설치미술 등 첨단을 향해 내달렸던 임씨가 이 시골 마을에 둥지를 틀었을 때 주변에선 신흥 종교의 교주 정도로 취급했다. “농사가 그리 고생스럽지만은 않죠”라고 묻는 그에게 “그럼요, 살아있는 것과의 일이니 재미있죠”라고 답하던 마을 사람들은 부쩍 친해진 그에게 “미술가이니 그림 좀 그려보라”고 권했다. 주변 권유에 첨단을 버리고 붓을 잡은 그는 소재와 배경도 주변서 찾았다.

 그렇게 그린 풍경화엔 ‘친구가 권해준 풍경’ 등의 제목을 붙였다. 임씨는 “타인의 시각을 표현한 작업이 흥미로웠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 그렸을 작품들”이라고 했다. 가는 붓에 기름을 적게 써 바싹 마른 느낌으로 쌓아 올린 유화는 오히려 맑다. 임동식 개인전 ‘사유의 경치Ⅱ’는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30일까지. 02-730-7818.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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