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의 ‘날벼락’ … “전쟁 난 줄 알았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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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일 오전 헬기가 충돌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헬기 프로펠러와 정면 충돌한 24~26층은 실내가 훤히 드러나도록 창문 유리가 깨지고 외벽이 파손됐다. [뉴시스] 2 피해를 입은 가정집 실내의 모습. 창틀의 새시가 휘어지고 산산이 부서진 유리조각이 바닥에 널려 있다. [사진 아이파크 주민]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쾅’ 소리가 나서 전쟁 난 줄 알았어요.”

16일 헬기가 충돌해 추락한 삼성동 아이파크의 주민 정덕현씨는 사고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헬기가 부딪친 102동 26층에 살고 있다.

고요한 토요일 오전, 헬기가 도심 건물에 충돌하는 초유의 사고에 아파트 주민들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평소 ‘철통 보안’으로 방문객의 출입을 통제하는 단지 안은 현장에 투입된 소방·경찰 인력과 수백 명의 취재진,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충돌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가구는 102동의 21~27층 3호 라인의 일곱 가구. 이 중 헬기와 직접 충돌한 23∼26층은 뒤 베란다 쪽 유리창이 전부 깨져 아파트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사고기가 추락한 화단엔 잔해가 흩어져 있고 기체와 부딪치며 부러진 듯한 나무 한 그루가 누워 있었다.

주민들은 “고층에선 옆 동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는데, 어떻게 헬기가 떴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또 헬기가 아파트에 부딪치는 순간과 추락하면서 땅에 충돌하는 순간, ‘쾅’ 하는 소리가 연이어 크게 났다고 전했다. 인근의 홍실아파트 주민들도 이 소리를 “천둥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할 만큼 요란했다.

103동에 거주하는 노동표(51)씨는 산책 도중사고를 처음 목격했다. 그는 “헬기가 다니는 길이 아닌데 소리가 들리더니 101동과 102동 사이로 헬기가 날아들어왔다. 충돌 직전에 중심을 잃으면서 기체가 요동쳤다. 순간적으로 헬기가 움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조종사가 (충돌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면으로 아파트와 부딪쳤다면 폭발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며 “추락한 기체에서 연기가 많이 나고 기름 냄새도 진동했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102동 33층에 사는 김모씨는 “지인들에게 연락이 빗발쳐서 그제야 사고 난 걸 알았다”고 했다. 그는 “연락을 받고 피해를 본 이웃이 걱정돼 사고가 난 집을 찾았다”며 산산이 조각난 유리가 널브러지고, 충돌의 충격으로 창틀의 새시가 휘어진 이웃 집의 내부 사진을 보여줬다.

대로 건너편에 있는 경기고등학교에서 야구 연습을 하던 박상규씨도 “헬기 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개가 짙어서 충돌 지점이 보이진 않았지만 천둥·벼락 치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헬기 꼬리와 잔해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고 했다.

헬기 프로펠러와 정면으로 부딪친 곳은 23~26층 3호 라인의 네 가구. 이 중 세 집은 사고 당시 비어 있었고, 26층에만 주민이 머물고 있었다. 충돌로 깨진 창문 옆에 있던 여성 한 명이 충격으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안정을 되찾았다.

삼삼오오 모인 일부 주민은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헬기를 띄웠다가 사고가 났다더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LG 측에서 보상을 해줄 것 같지만, 만에 하나 건물 구조가 틀어졌거나 하면 엄청난 소송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사고 헬기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 임원들을 태우고 이날 오후 1시에 열리는 한국여자야구대회 결승전을 관람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LG전자 측은 이에 대해 “임직원 3명이 전주 칠러(대형냉난방공조)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 1주일 전부터 헬기를 신청했다”며 “구본준 부회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낮 12시45분쯤 사고 현장을 방문해 “서울시 차원에서 조사한 뒤 국토교통부에 대안을 보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남상건 LG전자 경영지원부문장과 직원들은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기장 박인규씨와 부기장 고종진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편 아파트를 시공한 현대산업개발은 16일 사고 현장에 직원을 파견해 점검한 결과 “삼성동 아이파크는 고강도 철근 콘크리트로 설계돼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밀 구조진단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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