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 건 호양외교 닉슨 방중 성과|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조세프·크래프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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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닉슨」중공방문의 성과를 평가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번 회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역설적인 성격이다. 그것은 즉 복잡 미묘한 관계가 얽혀있어 미국이 중공과『대면』하는데 있어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미국의 이익이 득보다 실이 많게끔 돼있었다.
공동 코뮤니케에서 드러난 것 같이「닉슨」은 주은내에게 적지 않게 점수를 뺏겼다. 그러나「닉슨」이 더 이상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는 미국이「아시아」에서 원치 않는, 즉 편집광적으로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중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피하는데 그의 여행이 기여한바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가장 큰 손실은 대만문제이다.「코뮤니케」는 중국은 하나뿐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했다.
미국은「코뮤니케」에서 대만으로부터 미군 및 군사시설의 궁극적인 완전 철수를 약속했다.「코뮤니케」에는 대만을 외침으로부터 보호하는 미·중화방위조약에 관해선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코뮤니케」에서 합의된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작년11월30일「키신저」보좌관의 중국문제에 관한「브리핑」에서 암시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닉슨」자신이 그처럼 명백하게 대만을 격하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우기 이번「코뮤니케」의 충격은 대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프랑스」의 왕이 혁명으로 인해 단두대에 올라갔을 때 모든「유럽」의 군주들이 전전긍긍했었다.
따라서 중공과의 대결상태를 토대로 해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온 한국·월남·태국 등 아주의 중소국들은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이들 국가들보다 훨씬 강력한 입장에 처해 있고 중공과도 통상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딴 나라들과 똑같이『물이 새어드는「보트」에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좌등 수상 정부는 이제 북경 정권과의 접근을 보다 촉진하고 일본의 동남아 진출로 구실을 해온 대만과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닉슨」대통령이 반대급부로 얻은 것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삼켜야 할 약이 입에 더욱 쓰게 될 것이다.
통상과 문화교류의 확대, 그리고 미 외교사절의 수시 북경방문 등은 그리 큰 이득이 못된다. 이들 문제에 대한 중공의 공약을 이행하는 문제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해결을 보아야 할 판이다.
더우기 미국이 실제로 중공과 문화·통상·외교의 접촉을 크게 벌이게될 것인지 조차도 의문이다.
지난날의 경험과 선진·저개발국간의 관계를 염두에 둔다면「워싱턴」과 북경 사이의 거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별로 보잘 것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중을 통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따고 잃었느냐 하는 자질구레한 이해타산을 뒤집어 버리는 것은 꼭 한가지 경우밖엔 없다. 즉 중공이 미국의 안위에 대해 정말로 중요성을 띠게 될 경우란 꼭 한가지 경우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 경우란 중공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이 광대한 나라가 유혈과 붕괴의 길로 줄달음쳐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처리할 능력을 잃음으로써 외부의 공격과 굴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이고, 그런 경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국은 불가피하게 커다란 위기에 휩쓸리게될 것이다. 2차 대전 때 미국은 바로 그러했다. 한국전이나 월남전의 경우에도 미국은 그런 식으로 전쟁에 깊숙이 휘말리게 되었다.
「아시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이익은 유순한 중국, 자신의 국경을 자위하고 자신의 내정을 확고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중국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중공이 이제 문혁의 폭풍을 경과한 뒤 다시금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협상과정에서 점수를 몇 개 잃었다든가, 또는 매사에 철저한『주고받기』를 기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에 의해「닉슨」은 중공의 자존심과 자신을 세워주었다.「닉슨」은 중공에 대해 미국의 의도를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미·소가 일본과 인도의 협조를 얻으면서 중공을 외교적으로 봉쇄해 왔다는 망령을 씻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북경에서 베푼 연회석상에서 주가 말했던 바『어둠의 힘이 아닌 빛의 힘』을 증대시키려고 애썼다. 따라서「닉슨」이 아슬아슬할 이 만큼 미끄러운 언덕 아래로 지나치게 멀리 굴러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약간의 덤을 중공에 주는 것이 내내 계속되지만 않는다면 이번의 중공방문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리 내고 나중에 되돌려 받는 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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