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정 때 펴낸 첫 공식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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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상해 임시정부가 발간했던 3·1운동 자료를 포함한『한-일 관계사료 집』1질이 미국 콜롬비아 대 극동도서관에 수장돼 있음이 밝혀져 최근 세사연구에 큰 보탬을 주게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윤병석씨는 독립운동사 자료 수집 차 미국의 여러 도서관을 순방중 이를 찾아내 복사해 왔다고 말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임정의 첫 사업으로 편찬된 이 책은 우리 손으로 펴낸 최초의 공식기록인데 그 책이 국내에 전하는 게 없었다.
이 책은 1919년 7월 도산 안창호 총재·춘원 이광수 주임 주관아래 사료편찬 부를 구성해 편집, 그해 9월에 발간한 것. 내용을 모두 펜글씨로 써서 사진만으로 꾸몄으며 당시 1백 질을 발행했다고 당시의 독립신문에 소개돼있다. 제1부는 고대부터 병자조약까지, 제2부는 합방까지, 제3부는 1919년 2월까지, 제4부는 3·1운동이후.
이 사료 집은 당시 일제에 의하여 왜곡된 한국 관을 시정하고 한국독립의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편찬된 것으로 33인의 한사람인 김병조, 이원익 양 목사가 자료를 다수 수집했다고 서언에 기록돼 있다.
특히 제4부의 독립운동사에서는 3·1운동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그렸고 전국의 2백22개 군이 3·1운동에 참여하여 6천8백21명의 동포가 일경에 학살당했다고 기록했다.
3·1운동의 기록을 보면 서북간도를 포함한 전국 2백11개 군에서 1천6백81회의 시위운동이 일어났고 동포들의 사망자수는 6천8백21명, 부상자수는 4만5천1백63명, 일경에 의해 재 더미가 된 교회는 47개, 학교 2개, 민가 3백64채라고 기록했고 북간도 용 정에서 만도 20명의 동포가 학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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