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중공방문 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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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미대통령은 금 18일 중공방문의 길에 올랐다. 미국국가원수로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대륙을 방문하는 「닉슨」대통령과 그 일행은 하와이와 「괌」도에 기착하고, 21일 북경에 도착한다. 「닉슨」대통령은 1주일간 중국대륙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공수상 주은래, 당 주석 모택동과 일련의 획기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귀국키로 예정되어 있다.
지난여름, 「키신저」보좌관이 비밀리에 북경을 방문하고 나서 「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 계획이 극적으로 발표된 이래, 미·중공간 해빙 무드는 급작스럽게 성숙되었다. 이제 「닉슨」대통령이 예정대로 중국대륙을 방문하여 중공수뇌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게됨으로써 비단 미·중공관계뿐만 아니라 세계정세 전체가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워싱턴」에 있는 외교 업저버들은 미·중공회담은 주로 ①양국관계개선책 ②미국의 대 자유중국 방위공약 ③일본세력의 진출 ④월남전쟁 ⑤태평양상의 미군사력 등을 논의할 것이라 하는데, 양국간에는 ⓛ반 공식적인 외교기관설치 ②소규모 미국통상대표부의 북경주재 ③여행 및 문화교류 등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중공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되리라는 것은 추호도 의문시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20여 년을 두고 적대관계를 지속해온 미·중공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설사 서로들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국교정상화나 우호친선·평화공존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짧은 시일 안에 그 목적을 달성키는 어려울 것이다.
그뿐더러 미·중공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만문제·월남전쟁문제·한국문제·일본문제 등을 모두 평화적인 수단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해야하는데 이들 국제문제는 당사국의 의사를 무시하고서는 아무런 실효성 있는 결정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미·중공정상회담은 미·중공간 국교정상화 제일보의 디딤돌을 마련하면서, 그들 사이에 계류돼있는 제반 국제문제에 관해서는 해결의 기본방향에 대해 포괄적인 의견교환을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이번 미·중공 정상회담은 그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올리느냐 하는 것보다도 회담을 개최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2차대전후 미·소의 치열한 냉전대립으로 말미암아 세계평화의 지속에 중대한 의문을 느꼈던 세계 각 국의 정부나 국민은 1954년 미·소·영·불의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미·소 관계개선에는 별로 이렇다할 기여를 하지 못했었다. 미·소 양국은 그들이 서로 견지하고있던 힘의 정책으로써는 도저히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평화협상으로 여러 계쟁점을 순리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면서도 그들 양국이 실제로 평화공존을 하게 된 것은 1962연말 「쿠바」사태 이후부터였다.
미·소간의 이 같은 대립과 화해의 역사를 회고하여 본다면 단 한번의 미·중공정상회담이 비단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양국간에 가로놓여있는 국제문제들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요 과잉된 기대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에 있어서 우리 한국의 최대관심사는 미·중공수뇌들이 한반도정세를 검토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마따나 『전쟁도 평화도 아닌 오늘의 한국사태』를 뚫고 나갈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들끼리의 흥정을 벌이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점에 관해서 미국정부는 『맹방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임을 되풀이 다짐했고, 또 최근의 「닉슨」외교교서에서도 미국의 대한정책이 불변 하다는 사실을 유력히 시사하고있으므로 일단 안심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지난날 강대국간의 흥정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됨으로써 쓰라린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온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좀 신경과민 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된다.
「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중 우리가 특히 예민한 정보감각을 곤두세워 미·중공 수뇌사이에서 교환되는 의견이나 혹은 합의성립을 신속히 탐지하여,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국권수호에 대한 결의를 더욱 튼튼히 해 나가야할 소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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