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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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데이비드·사노프」(David Sarnoff)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더우기나 무명인사이다. 하지만 NBC나 RCA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NBC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 방송회사의 명칭이며 RCA는 역시 미국의 전자제품회사로 그 성가가 세계적으로 높다. RCA의 경우, 연간매상이 30억「달러」에 이르며 세계도처에 흩어진 공장만도 64개소나 된다. 고문인원은 자그마치 12만8천여명이다. 외신은 바로 그 양대회사의 설립자인 「사노프」의 부음을 알려주고 있다. 향년 80세. 14일자 성조지에 실린 그의 사진은 아직도 혈기에 넘친 장년의 모습이다. 「사노프」의 부음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명성이나 재력 때문이 아니다. 도리어 이 세상엔 그보다 더 눈부신 명성과 영화를 누린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노프」의 일대기는 그 누구보다도 교훈적이며 값진 데가 있다. 「러시아」태생인 「사노프」가 미국에 이주한 것은 1900년이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소년의 몸으로 가장이 되어야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신문팔이소년으로 나섰다. 물론 신문배달도 했다. 어린 소년에게 한가지 불변의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실」이었다. 15세 때 그는 한 전선회사의 사동으로 들어갔다. 밤이면 피곤을 무릅쓰고 「모르스」부호를 배웠다.
그 독학의 덕분에, 그는 좀더 큰 직장인 「마르코니」무선회사에 주급 5「달러」50「센트」를 받기로 하고 옮겼다. 1912년4월14일 무선통신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는 이상한 신호 하나를 포착했다. 영국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1천5백17명의 인명을 잃은 세기적인 침몰사고였다.
「사노프」는 무선전신을 통해 그 상황을 전세계에 알려주었다. 7백여명의 생존자 이름이 밝혀진 것은 오로지 이 무명의 통신사가 고군분투한 결과이다.
그에겐 한가지 꿈이 있었다. 「피아노」나 「오르간」처럼 각 가정에 무선으로 「뮤직·박스」(음악상자)를 공급할 수는 없을까? 즉 오늘의 「라디오」를 생각한 것이다. 이미 그는 「마르코니」회사에서 그 「아이디어」를 냈던 적이 있었다. 이 의견은 드디어 빛을 보게되었다. 이미 1920년대에 RCA는 「라디오·뮤직·박스」의 연간매상을 20여만 「달러」나 기록했다. 「사노프」는 1923년에 가정용 TV를 예언한 바도 있었다.
최근에 「사노프」는 30년간 재직한 RCA사장직을 물러나 쉬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인생의 바닥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룩한 사람이다. 성실·근면·노력·탐구·정열 등은 「요령제일주의」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우둔해 보이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로 인생을 값있게 사는 사람들은 그 우둔한 「성실가」라는 것을 「사노프」는 교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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