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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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판문점의 남북적십자 오찬회는 요즘 화제가 분분하다. 지난20일 북적 제의로 열렸던 오찬회의 식탁엔 독사주가 등장해서 흥미(?)를 자아냈다. 우선 사람들은 이 술을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측과 세속적으로 생각하는 측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독사주는「무체주」나 마찬가지이다. 「프로터콜」(외교적 의전)을 차리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식탁에 뱀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은 유쾌한 일은 못된다. 어느 사교장의 식탁을 보아도 향기로운 장미가 다소곳이 놓여 있게 마련이지, 상대만의 턱 밑에 독사가 꼿꼿이 서 있는 예는 없다.
역시 세속적으로 생각해도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구약의 창세기를 보면 인간을 제일 처음 죄악으로 유혹한 것은 뱀이다. 세상에 뱀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은 실로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우의를 돋우는 술이었다고는 어느 경우를 놓고 보아도 생각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외교, 혹은 사교의장에서 음주하기를 아주 즐겨하는 편인 것 같다. 하긴, 외교전략상 음주를 통해 상대방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흐루시초프 수감(소련)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호주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수상재 직시엔 걸핏하면「쿠렘린」궁에서「파티」를 열고 술을 마셔댔다. 그가 외국 외교관의 부인을 부둥켜안고 홍안백발로 춤을 추는 모습은 사진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교사건들 앞에서 술기운으로 「텀블링」재수까지 과시한 일조차 있었을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소련 외교를 보트카(「러시아」의 화주) 외교』라고 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그래서 내막기자「존·건더」가『흐루시초프 전기』에서 술회한 것을 보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주정뱅이는 아니었다. 점으로는 별 해괴망측한 언동을 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신념의 핵심과 확고부동한 목적이 뚜렷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흐루시초프에겐 술을 채워두는 위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흐루시초프」자신의 회고록에도 술 얘기가 나온다.「스탈린」은 여간한 독주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베리야」·「말렌코프」·「미코얀」등과 밤이 새도록 술내기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의외의 사실이 탄로되어 스탈린의 분노를 샀다. 그들 각자는 웨이트리스에게 은밀한 부탁을 해서「스탈린」이 더시는 술과 똑같은 빛깔의 냉수를 마시고 있었다.
「스탈린」앞에서 그들은 술에 취해 속을 드러내 보이는 일을 저마다 엄격히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도 공연히 술에 취한 듯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술의 용도나 음주의 내막은 대체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실로 독사주는 그런 내막이 숨은 독주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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