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업들도 스파이 짓" 또 터진 의혹 … 워싱턴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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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소 90여 개의 미국 민간 기업이 독일에서 미 정부의 스파이 행위를 도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탈리아에선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교황청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글로벌 포털업체 구글과 야후도 NSA의 해킹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우방 정상의 휴대전화와 e메일을 엿본 사실이 드러나 외교적으로 곤경에 빠진 미국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됐다.

 독일 주간지 슈테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최소 90개의 미국 민간 기업이 미 정부의 스파이 행위를 도왔다”며 “주요 30개 기업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NSA를 위해 직접 스파이 업무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도청된 통신 내용을 분석해 정보기관에 전달하거나 첩보원들을 훈련시키는 업무를 수행해 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AFRICOM)의 무인기(드론) 작전에도 이들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슈테른은 민간 기업들이 낸 비밀 구직광고와 기업의 구성원들, 미 정부와 각 기업 간의 계약사항 등을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슈테른은 또 이들 기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NSA 도청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전직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일했던 부즈 앨런 해밀턴이라고 밝혔다. 민간 컨설팅 기업인 이 회사의 부회장은 NSA 국장과 국가정보국장(DNI)을 지낸 마이크 매코널이다. 군을 포함한 미 정보기관과 민간 정보기업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협력해 왔다는 얘기다.

 같은 날 이탈리아 주간지 파노라마는 “NSA가 교황을 도청했다”고 보도했다. NSA가 지난 3월 교황 선출 선거인 콘클라베 개최 당시 추기경들이 숙소에서 주고받은 전화통화 내용을 도청하고 e메일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에서 선출되기 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자격으로 숙소에 머물 때 주고받은 전화통화도 NSA에 도청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러나 정보의 출처나 교황이 도청당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밝히진 않았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우리는 그런 사실을 들은 바 없고 관심사도 아니다”며 도청 가능성을 일축했다. 배니 바인스 NSA 대변인 역시 “NSA는 바티칸을 (도청)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사용자들의 정보가 망라돼 있는 구글과 야후의 데이터센터도 NSA의 목표가 됐다. 워싱턴포스트가 스노든한테 받은 일급 비밀문서를 토대로 31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NSA는 ‘머스큘러(MUSCULAR)’ 작전을 통해 이들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침투, 다량의 정보를 빼돌렸다. 이 작전에는 영국의 정보통신본부(GCHQ)가 함께했고, 지난 1월 한 달 동안에만 약 1억8120만 건의 자료가 수집됐다. 이 자료에는 누가 e메일을 주고받았는지 정도만 알려 주는 ‘메타데이터’뿐 아니라 문자·음성·영상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신문은 “앞서 폭로된 ‘프리즘’은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의 승인을 거쳐 인터넷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공식 제공받는 방식이지만 ‘머스큘러’는 NSA가 기업의 의사에 반해 공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구글 법무담당 책임자인 데이비드 드루먼드는 “정부가 우리의 내부 네트워크까지 들어와 정보를 가로채는 데 분노한다”며 “이런 행위는 (NSA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항의했다. 반면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테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건 맞지만 미국 회사의 서버에 들어가 정보를 빼낼 권한은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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