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는 독자와 논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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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와 이 신문 독자들 사이에 설전이 한창이다. 이라크 때문이다. 이라크전의 불가피성을 두고 독자 항의, 해명 사설, 독자 재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근 10년간 워싱턴 포스트 애독자였다. 한데 최근 당신네 신문의 이라크에 대한 편견과 이라크전을 부추기는 태도에 아주 신물난다." "워싱턴 포스트 논설위원들의 국수주의적인 전쟁 몰고가기(rush to war)에 실망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독자들의 항의 편지 중 일부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27일 '독자에게 드리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장문의 사설을 게재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우리 기자와 편집자들은 이라크전에 대해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논설위원들은 기사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는다"면서 사설과 기사의 분리를 강조했다. 사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기사까지 욕하지는 말라면서 일단 방벽을 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죽 나열했다.

"전쟁을 하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우리도 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데 사담 후세인을 놔두고 미국과 동맹국들이 안전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들의 도피처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런 행동들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는 게 우리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가. 답은 후자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처럼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되풀이해서 얘기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주장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해 "미국을 건드리지 않았으니 놔둬야 한다. 빈 라덴도 감시만 잘 하면 된다"고 방치하더니 결국 9.11테러가 터졌다는 것이다.

사설은 이와 함께 "슈뢰더 독일 총리의 말처럼 이라크전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거라면 그런 전쟁은 아무리 동맹국들이 지지해도 하면 안된다"면서 "하지만 만일 이라크전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핵심적인 것이라면 그건 아무리 남들이 반대해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독자들의 재반박이 거세자 워싱턴 포스트는 1일자 오피니언 면에 다시 지면을 크게 할애해 반대 주장을 실었다.

켄 버도프라는 독자는 "그 사설은 마치 자기는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톤에다가 과도한 단순화로 가득차 있다"면서 "이라크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핵을 개발하려 하고, 유엔 결의를 무시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왜 그냥 넘어가느냐"고 비판했다.

레너드 포릴은 "이 사설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나 로봇이 쓴 글 같다. 전쟁이 나면 죽어갈 이라크인들과 어린애들 생각은 왜 안하느냐"면서 "나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하고 싶지만 로봇은 부끄러움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워싱턴 포스트 지면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신문과 독자들 간의 공방은 신랄하면서도 점잖고, 표현이 격조 높다. 또 독자들의 쓴소리도 가감 없이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태도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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