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당뇨, 병원 안 가도 진찰 … 의협 "동네의원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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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환자가 인터넷 화상 시스템을 통해 진료를 받고 있다. 환자의 모습은 컴퓨터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의사에게 전달된다. [사진 보건복지부]

박근혜정부 창조경제의 핵심인 원격의료의 밑그림이 공개됐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탈 수 있는 게 요지다. 의료와 정보기술(IT)을 결합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격의료의 키를 쥐고 있는 의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앞날이 밝지 않다.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이런 환자가 혜택을 보게 된다. 고혈압 환자인 임옥화(88·여·서울 강서구)씨는 25년째 석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 받는다. 지금은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다. 10여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부터 딸의 도움을 받는다. 20분 넘게 기다려 5분 진료를 받는다. 임씨는 “의사가 ‘별일 없어요’라고 묻고, 혈압을 확인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임씨 같은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혈압측정기로 혈압을 재서 담당 의사에게 보내면 진단과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29일 입법예고 했다. 이르면 2015년부터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진료를 받게 된다. 지금은 의료기관과 의료기관 간에만 원격의료가 허용돼 있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25년째 시범사업만 해 왔다. 지난 18대 국회 때 정부가 산간벽지·섬·교도소 등에 제한적으로 의사-환자 원격의료를 도입하려다 야당과 의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민주당은 “의료의 상업화를 촉진한다”며 반대했다.

 이번에 복지부는 18대 국회 제출안보다 훨씬 진전된 안을 내놨다.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자(585만 명),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91만 명)이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수술·퇴원 후 관리가 필요하거나 가정폭력 피해자 등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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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한함으로써 관련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그간 의료기기와 정보통신의 발전을 막고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며 “개정된 의료법으로 모멘텀(계기)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대한의사협회(동네의원 중심의 단체)를 설득하려 애써 왔다. 그래서 만성질환자는 동네의원에서만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제한했다. 큰 병원이 기술력·자본을 앞세워 원격의료 환자를 빨아들일 것이라는 의협의 우려를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의협은 완강하다.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리적 접근성에 기반해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의원이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며 “입법예고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가정의학) 교수는 “원격의료를 위한 기기·기술·수가 중 어느 하나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본격 시행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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