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짬뽕면사무소 '면장' 윤호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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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이 꿈이었다는 윤호천씨가 자신이 만든 짬뽕을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과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전엔 면사무소의 면장(面長)이라 하면 해박한 지식으로 면의 행정을 맡아보는 최고 직위의 대명사였다. 나이 70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맛으로 신뢰를 얻으며 ‘면장’의 꿈을 이뤘다는 사람이 있다. ‘천안시 서북구 짬뽕면사무소’ 윤호천(68)씨다.

“이제껏 후회는 안했는데 이 나이가 되니 어릴 적 꿈이었던 면장은 한 번 해 보고 죽어야지 싶은 거예요. 짬뽕면사무소를 차리니 면장님 소리를 매일 듣게 됐어요. ‘등본 떼러 왔다’는 손님들의 우스갯소리에 ‘민원서류는 안된다’며 대답하는 일도 즐겁습니다.”

 지난 10월 25일 낮 12시 천안시 서부역 앞에 위치한 ‘서북구 짬뽕면사무소’. 북한 글씨체로 흘려 쓴 간판은 마치 60년대 어느 지방 읍·면사무소를 앞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소박한 외형과 달리 면사무소 안에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상에 놓인 그릇마다 홍합껍데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반 중국집에서 흔히 보는 ‘곱빼기’ 메뉴가 없는 대신 ‘양많이’를 주문하면 짬뽕부터 밥 종류까지 보통 가격으로 곱빼기 양을 퍼주는 푸짐한 인심 덕분이다. 손님이 ‘양많이’를 외치는 순간 주방에서는 후라이팬을 달구는 윤호천(68)씨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 나이까지 건강히 일할 수 있어 보람”

면사무소의 면장이 되는 일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는 윤씨는 실제로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 동안 고향인 경기도 여주의 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했었다. 복사기가 없었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모두 한자로 받아 적으며 민원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윤씨가 하는 업무였다.

낮에 면사무소에서 일하고 퇴근한 저녁이면 또 옥편을 펴고 모르는 한자를 익혔다. 공무원 되기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후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져 면사무소를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동창들 중에 구청에서 일하거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친구들도 지금은 모두 정년퇴직해 같이 늙어가는 나이예요. 이 나이가 되니 돈 욕심보다는 그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으면 보람이고 행복이죠.”

 윤씨는 30여 년 전 예전 청과시장 자리인 천안 영성동 파고다 아파트 앞에서 처음으로 중국집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남매를 낳아 키우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다시 중앙시장 앞 싸전 골목이라 불리는 남부농협 근처에서 ‘향촌’이라는 중국집을 하게 됐고 지금의 ‘짬뽕면사무소’까지 이르게 됐다. 지금껏 달라지지 않은 점이라면 오랫동안 함께 일해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다는 부인 장명옥(56)씨와 배달도 하지 않고 단출하게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통영에서 올라온 싱싱한 홍합 사용

짬뽕면사무소의 인기메뉴는 홍합짬뽕과 볶음밥이다. 가게 한 켠에 가득 쌓인 파란 생수통은 주방장인 윤씨의 요리 철학을 말해준다. 요리의 기본은 물맛에서 나온다는 생각 때문에 반죽부터 육수까지 모든 요리에 생수를 사용한다. 용대리 황태와 다시마, 파뿌리 등으로 육수를 내고 아침마다 통영에서 올라오는 싱싱한 홍합을 볶아 짬뽕을 만든다. 얼큰하면서 깔끔한 맛을 내는 짬뽕국물이 다른 중국집과는 다른 맛을 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더분한 주인 내외를 닮아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 맛이다. 그래서인지 홍합 짬뽕으로 해장을 하고 속을 달랜다는 손님들이 많다.

 윤씨는 “짬뽕면사무소의 하루 중 가장 바쁘고 힘들 때가 매일 30~40㎏의 홍합을 씻고 다듬을 때지만 ‘면장님’ 소리를 들을 때면 절로 기운이 솟는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양많이 짬뽕’으로 손님을 배부르게 하는 면장의 소임을 다 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to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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