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국학 거장' 김열규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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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까지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낸 김열규 교수. 그는 “요즘 사람들이 공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이 자라고 우거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한국학 분야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22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병약했다.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그의 자리는 책상이었다. 당번과 함께 그는 늘 열외였다. 조회 시간도 체육 시간도 그랬다. 그만큼 약했다. 대신 고인은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몸은 약했지만 생각의 근육을 키웠다.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고인은 문학과 여행을 좋아했다.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 지방에 내려오는 민담도 듣고, 민속도 봤다. 관심은 자연스레 민속학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어렸을 때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늘 잠들 때까지 할머니가 들려준 옛이야기들이 그가 천착했던 민속학의 뿌리가 됐다.

 서울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29세 때 대학교수가 됐고, 50년간 강단에 몸을 담았다. 충남대 조교수, 서강대 국문과 교수,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고인은 한국학 연구를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들은 맵고 짜다. 간을 친 기운이랄까. 그저 악다구니만 쓰는 게 아니라 고난과 고통에 맞서는 열정의 뜨거움이 있다.”

소금과 고추를 흩뿌리면 숨이 되살아나는 김장 배추와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의 글에는 우리식으로 한국인의 맛과 멋을 평가하는 친숙함과 절묘함이 배어있었다.

 우리 문화 중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걸로 ‘글 읽기’를 꼽았다. 어릴 적부터 서당에서 동양의 고전을 배우던 전통을 고인은 높이 샀다. “‘왜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배가 굶주린 시대였는데, 요즘은 영혼이 굶주린 시대다. 사람들은 입시와 고시, 자격시험을 위해 공부를 한다. 이해득실에만 매달린다. 공부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정서가 자라고 우거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

 정년을 6년 남겨둔 91년 고인은 낙향했다. 자연과 하나의 리듬으로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삶을 동경했다. 인제대 교수·계명대 석좌교수·지리산고등학교 강사 등을 지내며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쓰고, 강의도 했다. 지난 2월 출간한 『이젠 없는 것들』을 비롯, 『한국인 우리들은 누구인가』 『한국민속과 문학 연구』 『독서』 『한국문학 형태론』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유족은 부인 정상옥(수필가)씨와 아들 진엽(서울대 미학과 교수)·진황(현대고 교사)씨, 딸 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02-2072-2020.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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