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에 죽어 가는 어린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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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의 새싹 어린이들을 사람으로 보살피자는 「청소년보호의 달」, 그5월의 드높은 구호도 무색하게 끔찍한 어린이 유괴살인사건이 하루 한 날에 2건씩이나 발생하였다.
서늘해지는 세인의 가슴, 기가 막혀 혀를 차는 모든 가정의 놀라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비정한 여인들의 잔인한 수법에 대해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어 버릴 만큼 치가 떨리는 분노를 금할 수 가 없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애정 문제로 앙심을 품은 젊은 여인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과, 또 그 분풀이의 대상이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나, 상대방으로서는 가장 애지중지 하는 외아들을 물고 늘어져, 그들을 무참하게도 유괴 교살했다는 점에 있어서 공통되는 잔인성을 보여주고 있다. 26세의 처녀 염영희라는 여인은 자기와의 결혼을 반대해온 애인의 고모에 대해 원한을 품고 그 앙갚음으로 그 집 7세 된 외아들을 하학길에서 유괴, 산 속에, 끌고 가 손수건으로 목을 졸라 죽였으며, 33세 된 고복선이란 여인은 남의 첩살이를 하면서 자기 정부가 얼마 전부터 생활비도 잘 안대줄 뿐 아니라, 본처까지도 찾아와 행패를 부린데 대해 앙심을 품고 6세 된 본처 아들을 꾀어 내 자기 집에서 기저귀로 목을 졸라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들 범인 중 염 여인은 복수하기 위해 자기가 어린이를 죽였음을 밝히는 유서까지 남기고 자기도 음독 자살했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오늘날 이 사회에 조성되고있는 도덕적 무정부 상태, 도도한 인명 경시풍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누구라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래로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는 터이지만 우리는 이 두 사건을 보면서, 오늘날에도 상당한 교육까지 받은 부녀자의 원한이 이런 원시적인 형태로 밖에 표현될 수밖에 없는 오늘날 이사회의 후진성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반생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여인의 막다른 행동양태란 지난날과 같은 봉건적인 폐쇄사회 여성의 권리가 근원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자는 발언하는 것조차 아예 용납되지 않던 시대에서나 동정적으로 보아 넘길 수 있는, 반사회적인 자기 보존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부녀자에게도 적어도 인권상의 자유와 법률적 평등이 보장되고있는 개명사회에서는 그런 막다른 수단에 호소치 않고서도 얼마든지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가 있고, 또 짓밟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권리를 회복할 길이 열려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두 여인은 굳이 그 길을 찾지 못하고 남의 집 귀중한 어린 생명을 죽이고 자신들도 끝내 파멸의견을 돌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할 것이다. 이들 여인이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을 끝내 상대방가족의 가장 귀중한 생명과 맞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결국 오늘날 우리사회 전체의 도덕적 품성에 증대한 결함이 있고, 사회전체의 정신위생상태에 이상이 있다는 적신호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실로 지금 우리사회생활의 여러 면에 노출되고 있는 도덕적 품성의 몰락현상과 정신박약적 증세의 심도를 생각할 때 위정자들은 이제 그것을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육이나 종교, 또는 재력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인명 경시사상과 배금주의, 그리고 부정부패의 만연가운데 이 나라 국민은 어느덧 질서와 도의에 대한 만성적 불감증에 걸려있는 것이며, 위정자들이 지금 이 순간부터 대오일 번하여 이 망국적인 사회풍조를 말끔히 불식하기 위한 어떤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이민족의 장내는 실로 이번 사건의 여인들에 의해 애꿎은 죽음을 당한 어린것들과 같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비참한 연명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마저 있다.
한마디로 이 나라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어둡고 불합리한 그늘과 인간관계가 청소되는 날이 어서 와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서 원한과 상처받은 마음이 정정당당히 법과 사회의 양식에 의해 보상을 받고 달랠 길이 있다는 신뢰감과 슬기로운 지혜를 우리의 모든 계층 국민들이 하루속히 익혀야하겠다. 가장 귀한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를 깍듯이 보살피자는 5월 달에, 이밖에도 어른들의 횡포 때문에 수 없는 어린것들이 비명에 죽어가고 있는 이 나라 사회의 비리를 우리는 이게 그 밑바닥에서부터 불식해 나갈 정신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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