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맥 끊긴 현실 무시한 전문가ㆍ정부가 서둘러 만든 합작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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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단청 훼손은 ‘전통의 맥이 끊긴 현실을 무시한 전문가와 정부가 서둘러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 한국적 자화상을 보여준다.

우선 단청 작업은 돈으로 따지면 비중은 ‘사소하다’. 총 270억원 예산 가운데 단청 예산은 2.4%인 6억5000만원이다. 거기에 안료와 접착제인 아교 구입비는 1억1300만원이고 나머지는 인건비다. 문화재청 박왕희 과장은 “정부 노임 단가를 기준으로 많이 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료나 아교로 ‘돈 빼먹기’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단청 작업의 시작은 진지했다. 이명박정부는 ‘숭례문 단청을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는 첫 사례’로 삼았다. 곧 뭐가 전통 단청이며 어떤 안료와 접착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과학적 작업이 시작됐다. 2009년8월 홍창원 단청장을 책임연구원으로 하는 단청 문양 고증 작업이 시작됐다. 보고서가 마무리된 뒤 개최된 자문위원회 회의는 조선 초기 문양으로 하기로 결정됐다.

이어 2011~201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안료를 실험했다. 예를 들어 바탕에 쓸 호분(흰색 안료, 대합조개를 말려 소금기를 제거하고 가루를 내 만든다)은 산성도와 입도(가루의 크기) 분석을 했다. 2011년 2~11월엔 천연 안료와 합성 안료의 내구성을 알아보는 풍화 실험, 가스 부식 실험을 했다. 2011년 3월~2012년 12월까지는 한국·중국·일본산 안료와 합성 안료를 실험했다. 단청을 다 칠한 다음 마무리에 사용할 재료로 동백기름, 들기름도 검사했다. 안료 후보지를 멀리 네팔·부탄까지로 넓혀 연구했다.

그와 병행해 한국전통문화학교 주관으로 2011년 8월3일~12월20일 사이 5개월간 접착제 연구를 했다. 예산 3150만원이 투입됐다. 아교·젤라틴과 아크릴산 에스테르 수지를 수분 반응성, 내후성 검사를 했다. 해야 할 것은 다 했다.

문제는 이런 실험 결과가 현장에 직접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국산 전통 안료는 맥이 끊겨 국내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산을 구입해야 했다. 문화재청 직원과 자문위원들이 일본에 출장을 갔지만 안료와 단청 전문가의 참여는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결정이 됐다. 안료 업체의 A사장은 “당시 국산 안료와 접착제를 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안료 국산화를 위해 작업을 늦추는 분위기도 아니었다”며 “결국 일본 수간채(백토와 호분을 염색해 만든 안료)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납품업체인 나카가와의 사장은 “숭례문의 의미가 크니 천연물감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 물감 작업이 까다로우니 기술자를 보내겠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메아리가 없었다.

기와공사가 끝나고 공사 진척률 94%인 시점에 홍 단청장을 비롯해 20여 명의 장인이 연 1500명 투입됐다. 안료는 12종, 1330㎏이 사용됐다. 작업은 6개월 정도 진행됐다. 단청장은 현장에서 날씨와 필요한 양을 고려해 안료와 아교를 배합해 칠할 곳을 지정했다. 감독은 감리사인 금성종합건축이 했다. 감리사는 공정의 인력 계획도 세우고 과정을 기록했다. 이를 문화재청의 직원 5명이 분야별로 감독했다. 그러나 ‘단청 작업-감리-문화재청 감독’의 연결망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박 과장은 “연구 과정에선 배합이 정확히 계산되지만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칠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보완할 수도 없었다. 전통 안료와 아교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맥이 끊긴 지 40년이 넘어 축적된 경험이 없고 따라서 잘잘못을 가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업은 계속됐다.

A사장은 “현장에 문제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외부 의견을 일일이 받아들이면 일이 진행되지 않아 소통은 없었다”며 “문자로 아교 사용에 대한 주의를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결국 복원 5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본지가 확보한 10월15일자 나카가와사의 편지는 “아교는 전문가의 노련한 테크닉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나카가와사의 사장은 아교와 물감을 적절하게 쓰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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