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띄우는 소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삼일로 빌딩옥상에는 서울 시가지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읍니다.
나는 일에 시달려서 몹시 피로하거나 우울할 때면 곧잘 이곳을 찾아와서 멍청한 눈으로 시가지를 굽어보곤 합니다.
그러느라면 피로했던 머리는 어느새 거울같이 맑아지고, 엄청나게 커서 압박감을 주던 건물들이 무서운 흉기처럼 질주하는 차들이 마치 강난감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부는것처럼 작고 우습게 보입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게 어떻게 생각하면 참 우습구나.』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서다가 풍선을 띄우는 한 소녀를 발견했읍니다.
조그맣고 예쁘장한 가발머리 소녀는 뭔가 기도를 드리기라도 하는듯 두손을 모았다가 하늘높이 풍선을 띄우곤 합니다.
나는 잠시 혼 빠진 사람처럼 소녀의 거동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만 가만 소녀에게로 다가갔읍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소녀는 다름 아닌 엘리베이터걸이었읍니다.
나는 그 소녀가 유치원 어린이나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면서 풍선 따위를 가지고 놓는 것이 이상해서 불쑥 물었읍니다.
『누구에게 풍선을 띄워 보내는 거지?』그러자 소녀는 깜짝 놀라며 얼른 손에 쥐었던 풍선을, 감추었읍니다.
『겁낼 것 조금도 없어요. 나는 다만 호기심이 나서 물어본 것뿐이니까.』
내가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가며 말하자,그때서야 소녀는 얼굴의 긴장을 풀며 방긋 입을 열었읍니다.
『하느님께』『하느님께?』
나는 다소 뜻밖이어서 말문이 막혔읍니다.
『네, 하느님께 띄워 보내는 거예요.』
소녀는 조금 빠른 말씨로 말을 했읍니다.
『아가씨는 교회에 다니나?』
나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좀 엉뚱하게 물었읍니다.
그러자 소녀는 말을 않고 고개만 살랑살랑 흔들었읍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님을 알지?』
『전에 한번 가보았어요.』
『아가씨는 저 구름 위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믿는 모양이지?』
소녀는 대답을 않고 얼굴만 불그레 물들이더니 쪼르르 달아나 버렸읍니다..
나는 붙잡았던 새를 놓친 기분이 되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읍니다.
『내가 괜한 말을 해가 지고』
나는 스스로를 책하며 어슬렁 어슬렁 소녀가 사라진 쪽으로 발길을 떼놓았읍니다.
소녀는 밝고 명랑한 표정이 되어 오르고 내리는 손님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소녀가 운전하는 엘리베이터를 여러번 타보았지만, 오늘처럼 명랑하고 밝은 표정을 본적이 한번도 없읍니다.
늘 초조하게 지내시는 사람처럼 표정이 어둡거나 잔뜩 겁먹은 눈으로 흘끔거리지 않으면 몹시 지쳐있기가 보통이었읍니다.
나는 너무나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엘리베이터 벽에 딱 붙어 선채 소녀에게서 눈을떼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는 왜 내리시지 않고 계속 타고 계셔요?』.소녀가 조금 겁먹은 눈을 해가지고 내게 물었읍니다.
『응? 응, 좀...』
나는 당황해서 귓볼이 화끈거렸습니다.
『아가씨가 외로울까봐 동무를 해주려구.』
그러자 소녀는 픽 하고 웃더니 다신 더 입을 열지 않았읍니다.
나는 소녀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엘리베이터를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사방이 쇠로 꽉 막힌 엘리베이터가 문을 탁 닫고 올라가거나 내려갈때 그것처럼 답답하고 초조한시간은 없지만, 왠지 소녀 혼자 두고서 떠날 수가 없었읍니다.
소녀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가지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처음엔 겁먹은 눈이 되어 흘끔거리더니 차츰 시간이 더 흐를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며 공포로 변해 갔읍니다.
나는 내가 지키고 있어서 그런가 싶어 막 내리려고 하는데, 마침 그때 아주 멋지게 차려입은 건장한 신사 한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썩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사는 풍채도 그럴듯한데다가 시커먼 안경까지 끼고 있어서 감히 쳐다 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위압감을 주었읍니다.
나는 내리려던 생각도 잊은채 신사에게 정신을 뺏기고 있었읍니다.
『9층에 세워줘.』
신사는 위엄 있는 소리로 명령했옵니다. 소녀는 질린듯 표정이 굳어있었습니다. 나도 곁들여 가슴이 후르르 떨렸읍니다.
표시등에 빨갛게 불이 켜지며 엘리베이터가 9층에 멎었읍니다. 9층은 보석을 파는 백화점이어서 돈 많은 귀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읍니다.
『수고했다. 또 만나자.』
그러면서 신사는 오백원짜리 한장을 꺼내어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순간 소녀는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읍니다.
나는 소녀가 너무 감격해서 저러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신사가 몹시도 고맙게 생각되었읍니다.,
『세상엔 겉 인상과 다른 사람도 많이 있구나…. 』
나는 29층에서 내려서 전망대로 걸어 올라가며 신사와 소녀의 대조적인 모습을 그려 보았읍니다.
나는 초조하게 시계만 들여다보았습니다. 1분, 2분, 3분, 4분… 소녀가 교대하고 나올 시간이 자꾸만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미리 와 있는 것을 알고 안 오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나는 혼자 자문 자답하며 초조하게 소녀의 모습을 기다렸읍니다. 소녀가 꼭 그 시간에 이곳에 올라온다는 보장도, 약속도 없었는데 나는 바보처럼 소녀가 꼭 올라올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5분, 6분, 7분, 8분, 9분... 10분만에야 기다리던 소녀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도 그럴 까닭이 없는데 그랬읍니다.
나는 한달음에 쫓아가서 소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읍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아까처럼 쪼르르 도망가 버릴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만히 한쪽 구석에 숨어서 소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기로 했읍니다.
소녀는 아까보다 더 많은 풍선을 사가지고 왔읍니다. 그리고는 풍선에다 파란 볼펜으로 뭔가 열심히 써넣더니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르며 하나 하나 띄우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하도 이상하고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풍선에 쓰인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다행히 굵고 크게 썼기 때문에 얼른 알아볼 수 가 있었읍니다.
-하느님, 저는 또 죄를 졌어요. 저를 용서하여 주셔요. 저는 두려워요. 저에게 용기를 내려주셔요. 꼭 부탁입니다. 하느님!-
대략 이런 뜻이 풍선에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순간, 「아, 저 착한 애가 아까 그 신사로부터 받은 딥(수고했다고 주는 돈)오백원 때문에 고민하는 모양이로구나」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말했읍니다.
『얘,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건 네가 착하고 성실하게 일한 댓가야.』
나는 아차 했지만, 이미 쏟아놓은 물이었읍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 돌아봤읍니다.
『미안해. 내가 또 주책없이 방해를 놔서.』
나는 소녀의 표정을 살펴가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읍니다.
『괜찮아요 아저씬 아직도 안 가시고 여기 계셨군요.』
소녀는 의외로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말했읍니다.
『아저씨도 아까 그 안경 낀 쓰리꾼을 알고계셨어요?』
『뭐, 쓰리꾼이라구?』
나는 너무 놀라와서 한동안 말문이 막혀버렸읍니다.
한참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소녀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읍니다.
『아까 그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어요. 난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저는 경찰에 고발하지 못 한답니다. 두렵기 때문이지요. 저는 혼자고 그 사람들패거리는 많으니까요‥ 』
나는 점점 머릿속이 멍 해 왔읍니다. 무엇으로 한대 꽝 얻어맞은 것같은 느낌입니다.
나는 눈을 감고 귀을 막았읍니다. 소녀가 다시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아니면 팔랑거리고 내려가 버렸는지 알지 못했읍니다.
나는 두손으로 가슴을 싸쥐었읍니다. 가슴속에서 쾅쾅 울리던 소리가 밖에까지 튀어나왔읍니다.
『오, 하느님! 저에게 용기룰 주십시오….』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굻고 하늘을 향해 호소했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