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복지, '정치실패' vs '보편적 나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는 정치실패이자 낭비일까, 충분히 나눠 쓸 수 있는 보편적 정의일까.

14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3유민포럼-한국형 복지모델의 모색 심포지엄’에서 보수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복지전문가들이 나서 현재 우리나라 복지를 점검하고 한국형 복지모델을 모색했다.

먼저 보수진영 대표로 나선 한국재정학회 현진권 회장은 ‘경제여건에 맞는 복지정책 모색: ’정치실패‘로서의 복지팽창’에 대해 발표했다.

현 회장은 현재의 복지정책을 ‘정치실패’의 현상으로 바라봤다. 정치인들이 정치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복지팽창 정책안을 제시하며, 사회의 공익과 일치하지 않는 복지정책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문제는 무료급식, 보육, 간병서비스 등 부자에게도 공짜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누군가는 복지의 대가(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 없는 사람에게도 무상복지 혜택이 제공되는 건 낭비라는 이유에서다.

현 회장은 “한국은 복지 규모가 GDP대비 7%로, OECD평균 21%에 비해 열악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유럽 국가는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낸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그만큼 우리나라도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한번 주어진 공짜복지는 절대 거둘 수 없다”며 “국민들의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포플리즘 복지정책은 반드시 다른 항목의 세출 절감안이나 새로운 세수증대 방안을 함께 제시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짜복지정책의 문제를 국민에게 교육, 각인시켜 포플리즘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보편화하는 것을 근본적 해결방법으로 제시했다.

이어 진보진영 대표로 나선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윤홍식 교수는 ‘체제차원의 보편주의 복지국가: 진보가 그려야 하는 한국복지국가’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나눠 쓰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복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윤 교수는 “현재 상위 30%는 소득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70%이하 가구들은 소득이 줄고 있다”며 “이 상태라면 미국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진단했다. 소득의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와 노인빈곤, 교육, 의료, 주거 등 민생 5대 고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어 “사회보험은 모든 사람이 정규직이라는 전제하에 성립됐다”며 “하지만 전체 50% 이상이 비정규직인 상황으로 노동시장이 변화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복지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진보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 복지를 꿈꾼다”며 “또한 진보는 무상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새 복지가 무상의 문제로 매몰된 것은 바람직 않다는 의견이다.


이어진 토론시간에는 서울대 안상훈 교수, 연세대 양재진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윤희숙 박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안 교수는 ‘복지=정치실패’라는 용어에 대해 “공짜복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실패임은 분명하나, 과거 경제성장만 추구하며 챙겨야 할 복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도 ‘과거 정치실패’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형 복지전략으로 고용증진 효과를 동반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형의 복지, 어려운 계층부터 챙기는 차등적, 긍정적 선별주의, ‘사회적 벤처’를 통해 ‘착한 공급자’ 양성 등을 꼽았다.

양 교수는 “진보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한 엄격한 재정운영’이라는 보수진영의 주장을, 보수는 ‘복지국가는 시대적 과제로,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오늘 발표에서 2차 분배에 대해서만 얘기했는데 노동시장에서부터 기업, 노동자 스스로가 1차 분배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북유럽처럼 행정효율성을 높이고, 단순히 지출만 늘리고 몸만 커지는 복지 성장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 투자해야 할지 여야, 진보보수 구분 없이 학계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박사는 “한국형 복지모델은 이미 독자적으로 형성돼있다”며 “과거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의 시각에서 복지를 바라보고 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열린 유민복지포럼은 3부 순서로 진행됐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원장, 복지부 서상무 전 장관, 청와대 최우언영 고용복지수석, 새누리당 안종법 의원, 민주당 홍종학 의원들이 참여해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과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 논의했다.

[인기기사]

·태아 입체 초음파 사진 감상해 보세요 [2013/10/15] 
·을지대, 지멘스에서 1억 지원 받는다 [2013/10/15] 
·“네트워크 병원 규제가 의료산업 경쟁력 떨어뜨려” [2013/10/15] 
·[카바수술 이야기]⑭ 병은 어떻게 생기는가 [2013/10/15] 
·일동제약, 아슬아슬 경영권 지주사 전환으로 방어? [2013/10/15] 

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