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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되치기 당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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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한·일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일본 내 취재환경도 점점 험악해졌다.

 지금과 비교하면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재작년 8월은 ‘태평천하’였다. 전성기를 달리던 한류 열풍 덕분에 어딜 가나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이후 지난해 여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으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아베 신조 내각 출범 후엔 거친 폭풍우로 바뀌었다.

 신경이 날카로운 건 일본 국민도 우리 국민 못지않다. 원전 오염수 문제로 한국 정부가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갈등지수는 더욱 치솟았다.

 지난달 중순 JTBC의 후쿠시마 특집을 위해 도쿄 도심에서 길거리 여론조사를 했다. ‘오염수 유출 이후 수산물 먹기가 얼마나 불안한 지’를 묻는 객관식 문항의 패널을 들고 긴자 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정말 별일이 다 벌어졌다. 공사장 출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은 한국 취재진임을 안 뒤 “여기서 얼쩡대지 말라”고 시비를 걸었다. 점잖은 인상의 50대 남성은 우리를 향해 침을 뱉기까지 했다. 겉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들로부터 당한 봉변이었다.

 최근엔 일본 언론으로부터도 불쾌한 일을 당했다. 지난달 21일 도쿄 도심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 개회식에 관한 한 일간지 기사 때문이다.

 “반일 의식을 부추기는 건 한국의 언론들” “‘대립을 넘어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껴달라’는 이병기 주일대사에게 한국 기자들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와 위안부 문제로 양국 관계는 악화돼 있지 않느냐’는 심술궂은 질문을 던졌다”는 내용의 기사다. 개회식 당일 현장을 취재하며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하시느냐”는 호의적 질문을 이 대사에게 던진 당사자로선 동의할 수 없는 기사였다.

 양국 관계가 역대 최악인 만큼 어느 정도의 감정싸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대방을 찌르는 한 수는 정교해야 하다.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어설픈 공격은 곧바로 되치기를 당할 수 있다. 근심스러운 건 요즘 한국 쪽에서 감정에 치우친 무리수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 은퇴하자 한국 네티즌 사이에선 “아베 총리가 미워서 은퇴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고, 일본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국의 ‘억지 케이스’로 이를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일본 수산물 금수조치 주무장관의 갈팡질팡 행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과학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면 현재로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본 측에 동조하는 듯하다가 어느 날 돌변해 “비도덕적인 애들”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부어대니 듣는 쪽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논리와 일관성 없이 그저 우겨대기만 한다면 “오염수 문제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전 세계를 상대로 우겨대고 있는 일본 정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