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원’(2일 개봉, 이준익 감독)은 아동 성폭력을 다루지만, 화면은 자극적이지 않다. 대신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사려 깊게 담겼다.
엄지원(36)은 이 영화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아홉 살 딸 소원(이레)의 엄마 미희를 연기한다. 세상 모든 어미의 심경을 대변한 그 모습에 보는 이의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는 “‘소원’은 내 ‘진짜’를 보여 준 첫 번째 영화”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연기를 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내 연기 인생 대표작 될 수 있을 것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다던데.
“2년 전쯤 출연제안을 받았다. ‘감사하지만 제 실력이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 영화는 ‘잘 하는 척 하는 연기’에 그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희의 감정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수락했나.
“JTBC 주말극 ‘무자식 상팔자’를 찍을 때, 평소 친분이 있던 배우 송윤아가 전화로 ‘시나리오 보낼 테니 잘 부탁해’ 라고 하더라. 그제야 원래 내게 올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원 아빠 역으로 설경구가 출연한다는 것도 믿음직스러웠다.”
-자신감이 생긴 건가.
“그런 건 아니다. 고작 2년 사이에 연기력이 얼마나 많이 늘었겠나. 다만 이토록 가치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부족하지만 내가 한 번 해볼까?’ 하고 용기를 낸 것이다.”
진짜 맨얼굴 … 화장기는 싫었다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근사치가 아닌 진짜. 노 메이크업 같은 메이크업, 잘하는 것 같은 연기, 그런 건 싫었다. 다행히 정말 좋은 감독과 배우를 만나서 그 선택에 힘을 얻었다.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데 설경구가 몸을 사리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설경구는 아예 영화 의상을 입고 출퇴근 하면서 계속 소원 아빠의 삶을 살았다. 정말 고마웠다.”
-엄지원이라는 배우 대신 미희만 보인다.
“최고의 칭찬이다. 예전에 ‘너는 뭘 해도 엄지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익숙한 습관을 다 버리고 연기하는 것이 어색해서, 내게 익숙한 것들에 적당히 타협하며 연기하던 때가 있었다. ‘소원’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첫 번째 작품이다. 나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가족이 절망을 극복하는 과정이 예쁜 동화나 판타지 같다는 비판도 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위로의 방식이야말로 정답이라고 본다. 사람이 넘어지면 ‘많이 아프지?’하며 붙잡아줘야지 ‘그러게 누가 넘어지래?’라고 쏘아붙이는 건 잘못된 것 아닐까. ‘현실에서는 절대 이렇게 착한 방식으로 타인을 위로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건,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 같다. ‘소원’은 마땅하고 옳은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 영화다.”
판타지 같다? 이런 위로가 정답 아닐까
-‘무자식 상팔자’ 역시 배우 엄지원이 달리 보였던 작품이다.
“내게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데뷔 후 선배 연기자들과 부대낄 기회 없이 10년을 보냈다. 운 좋게도 좋은 감독,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할 기회는 많았지만 내 연기를 판단할 틈은 없었다. ‘최고는 아니지만 적당한 배우’로 지내왔던 거다. 그러다 ‘무자식 상팔자’를 만났다. 이순재·김해숙·유동근 같은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연기학원 다니는 기분이었다. 종영 파티 때 ‘배운 게 많아 출연료를 반납해야겠다’는 농담까지 했을 정도다.”
이은선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황진미 영화평론가)
분노 일변도의 세상에서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감동. 사건을 소비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듬으려는 성숙한 시선.
★★★(지용진 기자)
지독한 상처를 받은 아이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건네듯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냈다. 보고 나면 마음이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