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총리인준 나란히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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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6일 우여곡절 끝에 고건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대북(對北) 비밀송금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안을 가결했다. 외견상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필요한 것을 얻은 셈이다. 이로써 양당은 파국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만일 이날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면 정국에는 파란이 불가피했다. 여야는 대치 상태에 돌입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큰 차질이 빚어졌을 것이다. 盧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천명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무리 없이 통과된 데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 이미 특검법안을 먼저 통과시킨 이상 高후보자를 인준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만일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盧대통령 못지 않게 한나라당도 엄청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5년 전처럼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여론이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8년 DJ(金大中)정부 출범 직후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서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해 주지 않고 6개월 동안 끌었다.

이날 박희태 대표권한대행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면 안된다"며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高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확산되던 한나라당에서 60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까닭은 당 지도부의 그런 인식이 공감대를 넓혀갔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 한나라당이 인사문제를 먼저 처리해온 국회 관행을 깨고 의사일정 변경안을 통과시켜 특검법안을 高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앞서 통과시키자 민주당 의총에선 "총리후보자 인준을 미루더라도 본회의장에서 밤샘농성을 하자"는 강경 발언이 속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총리가 없어 조각(組閣)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본회의장에 입장해 高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 참여했다. 여기엔 "국민을 보고 정치하자"는 한화갑 전 대표의 설득이 주효했다.

하지만 정국에 순풍이 불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주당은 특검법안 처리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법대로 했을 뿐"이라며 코웃음 친다.

따라서 대화정치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 특검수사가 시작될 경우 수사대상.사법처리 문제 등을 둘러싼 양당의 갈등이 예상된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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