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30억 … 탈세·담합 신고 '로또 포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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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미국 국세청(IRS)은 UBS의 전직 재무 상담가인 브래들리 버켄필드에게 1억400만 달러(1170억원)라는 천문학적 포상금을 줬다. 자신의 고객을 포함한 재력가들의 탈세 정보를 통째로 IRS에 넘겨준 대가다. 내부 제보의 힘은 강력했다. UBS는 꼼짝없이 7억8000만 달러의 추징금과 벌금을 내야 했다. 버켄필드 덕에 수천 개의 비밀계좌 정보까지 얻게 된 IRS는 사상 최고액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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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인생역전’ 스토리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게 됐다. 로또 당첨금 규모인 20억~30억원대 포상금을 내세운 각종 신고제도가 국내에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탈세 제보의 경우 신고 포상금 한도가 지난해 1억원에서 올해 10억원으로 10배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에 다시 이를 20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 행위 신고 포상금 한도를 현행 1억원에서 20억원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보험사기 신고 포상금도 최근 1억원에서 5억원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신고 포상금을 기존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인상했다. 한때 ‘최고액’의 상징이던 간첩 신고 포상금은 현재 5억원이다. 포상금으로만 보면 탈세와 주가조작, 담합 등 경제 관련 범죄가 간첩 행위보다 더 큰 악(惡)으로 등극한 셈이다. 이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지하경제 양성화’ ‘주가조작 근절’ 등이 주요 정책과제로 부상한 영향이다. 문제는 탈세·담합·주가조작 등이 갈수록 지능화돼 외부에서 잡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김요성 세원정보과장은 “최근 늘어나는 역외탈세의 경우 여러 국가에 걸쳐 수많은 가공의 거래를 통해 이뤄져 사실상 내부자가 아니면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내부 제보자 확보를 위해 포상금 제도를 손보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영향”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06년 100만 달러로 묶여 있던 탈세 포상금 한도를 아예 없앴다. 포상금도 추징금의 최고 30%까지 줄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영국 등 공식적인 포상제도가 없는 나라에서도 실제로는 세무당국이 협력자에게 재량껏 보상금을 주고 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이런 ‘로또’ 포상금이 노리는 건 제보의 양보다 질이다. 공정위 노상섭 시장감시총괄과장은 “대규모 담합의 결정적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주로 대기업 임원급”이라면서 “이들의 퇴직 이후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수준은 돼야 고급 정보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 포상금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고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탈루 세액이나 담합 규모가 커야 하는 데다 이를 입증할 장부 등 확실한 자료까지 제시해야 되기 때문이다. 담합의 경우 30억원의 포상금을 받으려면 과징금 부과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야 한다.

 억대의 포상금을 받을 정도의 제보도 그리 흔치 않다. 올 들어 국세청이 지급한 포상금은 126건에 21억원. 제보자당 1670만원꼴이다. 이 중 1억원이 넘는 포상금을 받은 제보자는 두 명에 그쳤다. 보험 사기의 경우 지급된 포상금은 평균 60만원 안팎이다. 지금껏 지급된 최고액은 1억2600만원이다. 이 때문에 포상금 상한을 무작정 올리는 방식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4월 세법 검토보고서에서 “탈세 제보 포상금 한도를 추가로 인상하는 것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수십억원대 포상금을 도입한 이후 제보가 늘어나는 등 홍보 효과는 상당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올 들어 8월까지 국세청에 접수된 탈세 제보는 1만214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0% 늘었다. 2011년 최고 10억원의 포상금을 내건 한 대형 보험사로 들어온 보험사기 제보도 2년 새 3배로 증가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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