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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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옛 선조들의 백자와 청자 솜씨는 이미 세계적으로 감탄을 받을 만큼 인정되고 있으나 대대로 이어오는 토속적인 오지그릇의 멋은 그것이 너무나 생활과 가깝게 있어서인지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있다. 그리하여 오지그릇은 장과 김치만을 담는 독 정도로, 멋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취급 되어왔다. 예법 있는 가정에선 밥상 위에 오지그릇을 올려 놓지 않았고 올려놓는다 해도 「뚝배기」의 어감처럼 된장찌개 선을 넘지 못하는 천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흙의 운치와 소박한 토속미가 예술품으로서의 감동을 충분히 준다』고 15년 동안 이 오지그릇의 멋을 즐겨온 시인 조애실씨는 말한다.
『우리 고유의 오지그릇엔 「모던」한 서구적인 선은 없어요.』 그 대신 물동이나 화로·장독에서 오는 거친듯 소박한 느낌, 가난한 안방 아낙들의 손길을 통한 차분한 대화를 읽을 수 있다는데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조 여사는 그동안 손수 오지굽기를 하여 좀더 다양한 예술품의 가능성을 시험해봤다,
보통 장독을 만드는 똑같은 적토와 유약을 쓰고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이어서도 얼마든지 무궁무진한 변화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지굽기는 혼자 집에서 할 수 없는 「너무나 복잡한 과정」때문에 웬만큼 열성이 적어서는 하기 어렵다고 조 여사는 말한다.
흙을 다듬는데서부터 시골에 들어가 불을 때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오기까지 시간과 노력의 소비는 오히려 「취미」의 영역을 넘는 것이라고까지 한다.
오지굽기는 우선 질 좋은 적토를 구해다가 체로 잘 쳐서 물에 갠 다음 앙금을 앉혀 떡가루처럼 보드랍게 만든다. 그리고 떡메로 여러 번 이겨 점토를 만든다. 나중엔 떡메가 흙에 붙어 힘들게 떨어낼 정도가 되어야한다. 이렇게 풀기를 낸 다음 손으로 만져 모양을 지을 만큼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도록 맞춘다.
모양을 빚을 때는 물레에 돌려 가면서 만드는데 좁은 술병의 목부분 같은 곳은 따로 만들어 또 물레에 돌리면서 붙인다.
모양이 다 빚어지면 「적당하게」말려야 하는데 그늘에서 말리다가 때로는 직사광선도 쬐고 바람도 알맞게 쐬어야한다. 이것을 잘 조절하는 길은 체험으로만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햇볕이 너무 쬐어도, 바람을 너무 받아도 이내 튼다는 것이다.
흠 없이 잘 말랐을 때 유약을 바른다. 유약은 지방마다, 사람마다 각기 비법을 갖고있어 상품으로 사기는 힘들고 자기가 만들거나 전래의 계승자들을 찾아가 구하는 수밖에 없다.
유약을 바른 뒤, 가마에 넣고 굽는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는 똑같은 흙으로 덮개용을 여러 개 만들어 씌워 가마 속에서 다치지 않도록 한다. 조 여사는 『굽는 열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모양과 색이 달라진다』고 한다.
똑같이 만들어 넣어도 나중에 꺼내보면 푸른빛 도는 것, 얼룩진 것, 짙고 엷은 것 등에 크기마저도 열도 때문에 줄고 늘어 하나 하나가 개성을 갖고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불을 때는 일은 오지굽기에서 가장 힘들고 실수하기 쉽다. 장작과 잎나무를 한숨씩 돌려가며 39시간을 쉬지 않고 불을 때야하는데 독 짓는 고장에 가면 이 불때기만을 대대손손 이어오는 집들이 있다.
불때기가 끝나고도 사흘쯤 그대로 두어 뜸을 들여야한다. 성급하게 토벽을 헤치면 폭발할 염려가 있다.
『자기가 마음 먹은 것의 3분의1이 나오면 성공한 셈』이라고 말하는 조 여사는 굽기와 열도와 시간의 조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리지만 한번 정을 들이면 손을 뗄 수 없는 취미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윤호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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