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한 「스케일」에 영감의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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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이 공동으로 주최한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외르크·데무스」의 독주회 (15일 밤·서울 시민 회관)는 프로그램 외에 「바흐」「슈만」「슈베르트」등 3곡이나 앙코르 연주 할만큼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그는 정말 대단한 연주가다. 거대한 고딕의 사원을 짓는 솜씨와도 같이 우람한 스케일에 폭군과도 같이 위압적인 음형,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도 탄탄하고 깨끗한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다.
터치도 선명하려니와 마치 박애를 펴듯 친근 소박한 음악성, 리스트에 비길 만큼 변화무쌍하고 섬세한 테크니크, 직선적인 설득력은 그의 인간 전부인 것 같다.
각기 다른 감흥에 물든 슈베르트의 『고흥곡』 세 개 중 E 플랫 장조, C장조는 곡상의 전개가 완벽했으며, 베토벤의 『영웅 변주곡』 (작품 35)은 자기의 예술적 몰입을 얘기한 듯 힘과 미의 조화를 이룬 역작. 또 빈의 기질을 타고난 그의 해석은 가장 타당했다.
그러나 드비시 곡 『세개의 영상』에서는 색다른 제의를 했다. 가령 선율은 분석적인 (4·5도 병행의) 음 조직에 있어서 주음의 셈 (강) 탓으로 인상주의적인 특유의 빛깔이 덜했다.
다시 말해서 감각적인 음색·젖빛처럼 뿌연 소노리테 (오향성), 섬세한 리듬의 뉘앙스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했으나 귀담아 들으면 역시 자기 나름의 역설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세개의 스토리로 엮어진 슈만의 저유명한 『환상곡 C장조』 (작품 17)는 원숙한 주법에 힘입어 더없이 아름답고 열정적인 영감의 음악으로 들렸으며 이곡에서 그의 기술과 지혜는 더욱 빛났다.
김무광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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