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의 나체화라도 상품에 붙이면 음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법원형사부(주심 홍남표 판사)는 30일 하오 "세계명화집에 들어있는 나체화라도 객관적으로 음란성이 있을 때는 이를 예술·문학·교육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상품에 곁들여 시중에 판매할 목적으로 복사, 제조하거나 판매할 때에는 명화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음화제조 판매 죄가 성립된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렸다.
이 같은 판례는 "예술작품이라 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음화성 여부가 구별되며 예술성과 음란성이 양립한다"는 검찰의 법 해석을 쫓은 것으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고있다.
재판부는 고야의 명화 『나체의 마야』를 오프세트로 원색인쇄, 성냥갑 속에 넣어 팔아, 검찰에 의해 음화제조 판매 죄로 기소된 유엔화학공업 대표 신상철(47), 신우정 판사대표 정용전 피고인(52)에 대한 상고심공판에서 이와 같이 판시 하고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 원심대로 벌금 4만원과 벌금 2만원의 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①작품의 음란성여부는 그 작품자체로서 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하며 제조 및 판매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②음화제조 내지 판매 죄의 법의 성립에 있어서도 그러한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를 제조하거나 판매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 충분하고 그 이상 그것이 음란한 것인가 아닌가를 인식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 음화 제조 판매 죄의 한계를 명백히 밝혔다.
피고인들은 69년5월 고야의 작품『나체의 마야』를 가로 5㎝, 세로 3㎝ 크기로 4천장을 인쇄, 유엔성냥갑 속에 넣어 팔아 검찰에 의해 음화제조 판매 죄로 기소된 후 1심인 부산지법(최범호 판사)은 지난 4월6일 『나체의 마야가 예술작품으로 있을 때는 명화로서의 음란하다고 할 수 없으나 일반대중들, 특히 이를 순수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공개해서 항상 볼 수 있는 성냥갑 속에 넣어 두었을 때는 상대적으로 음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 유죄판결을 내렸다.
피고인들은 1심 판결에 불복, "세계명화로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널리 퍼진 명화전집에서 발췌한 그림을 음화로 규정한 것은 사실인정을 잘못한 것"이라고 항소했으나 부산 지법 항소부(재판장 한석규 부장판사)는 이를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피고인들은 다시 "형법에 규정된 음화제조 판매 죄의 대상은 음화이며 자신들이 인용한 것은 명화이므로 원심이 잘못 판단했다"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문제된 그림을 보는 자에게 정상적인 성적정서와 미풍양속을 해칠만하고 이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상용에 이용한 것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유죄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