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회관의 교훈|김후란<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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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어디에서도 그 순수한 모습을 한눈에 들게 하는 남산허리의 「매머드」어린이회관. 육영재단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요, 5백만 어린이의 꿈의 전당으로 등장한 회관이 개관 3일만에 문을 닫아야했던 사실은 어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이것도 너무 많은 어린이들이 밀어닥쳐 입장 불가능상태가 벌어지고 더러는 기물이 파손되어 부득이 휴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현실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함께 새삼스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나는 철없는 어린이들을 탓하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남의 것, 더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공기물일수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하고 나 하나의 부주의로 많은 사람에게 폐가 되는 두려움에 대해서 부모들의 조언이 있었던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
물론 본의 아니게 다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의 대부분은 남의 물건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공중사회에서 지켜야할「매너」에 익숙치 못한 데서 빚어진 결과라 할 때 평소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가로수 밑을 걸어가다 무심히 손을 뻗쳐 나뭇잎 하나를 딴 사람이 『아저씨, 지나가는 사람마다 하나씩 딴다면 그 나무가 어떻게 되겠어요?』하고 눈빛 초롱초롱한 소년에게 힐책을 들었다. 외국에서의 이야기이다.
이 교훈적「에피소드」는 그 나라의 공중도의심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산 표본이요 부러운 시민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훈련과 경험이 얕은 탓도 있겠으나 내 살림 내 사회를 아끼는 것이 바로 내 나라를 아끼는 것이라는 자각이 적다.
따라서 그 정신을 철저히 아이들에게 시범하고 심어주지 못하는 어른세계의 부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 같다.
무료강습이나 무료회원제일수록 별반 감사할 줄 모르고 무책임하게 여기는 일반적 풍조도 마찬가지다.
아낀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 후 정돈하는 습성도 길러주어야겠다. 이것은 흐트리지 말라고 야단하기보다 흩어진 장난감은 자기 손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시킬 줄 아는 부모 밑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어린이헌장에서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3조)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도의를 존중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8조) 고 밝히고있다.
이제 우리 아동문화사에 길이 남을 어린이회관은 섰다. 모처럼 마련된 훌륭한 시설을 보다 많은 어린이가 진실로 유익하게 즐겁게 활용할 수 있도록 어른들의 눈길과 가정교육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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