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싼 전기요금으로 경쟁력 찾는 시기 지났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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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익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뉴욕대 경영학 석사. 한양대 경영학 박사.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KOTRA 사장 역임. 2013 대구 세계에너지 총회(WEC) 조직위원장.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공포가 닥쳤던 2011년 9월 이후 전력난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 국내 전력 공급의 중심축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한창이고 밀양 송전탑 공사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대구에서 에너지 관련 세계 최대 행사인 ‘세계에너지총회(WEC)’가 열린다. 조환익(사진) 한국전력 사장을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 사장은 대구 WEC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다. 대담은 홍병기 경제에디터가 진행했다.

28일 오후 4시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11층. 엘리베이터에서 사장실로 가는 복도는 어둑어둑했다. 건물 안은 양복을 입은 탓인지 다소 후텁지근했다. 실내 온도는 28도를 조금 넘었다. 조 사장은 “폭염이 누그러지면서 전력 사정이 다소 나아지기는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라며 “늦더위가 남아 있는 데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난방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에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논의되면서 한국전력의 주가가 오름세를 타고 있다. 전기요금을 얼마나 올려야 하나.
“한전이 언급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동안 전기요금은 100%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책 논리가 작용해 왔다. 그러더라도 현재의 요금 수준은 너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전기 공급 원가에도 못 미친다. 한전은 상반기에만 1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과도하게 낮은 요금은 과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가스 대신 전기를 더 많이 쓰게 된다. 가격 기능을 통한 수요 관리와 합리적인 소비 유도를 위해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한전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판매 단가의 경우 한국을 100으로 볼 때 미국 107, 영국 155, 일본 234 수준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철강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싼 전기요금에서 산업 경쟁력을 찾으려던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그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은 제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아래 주택·일반용보다 낮은 수준에서 원가 이하로 지원해 왔다. 산업계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07년 이후 단계적으로 요금을 현실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매우 낮은 수준이다. 원가 수준으로 추가적인 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전력 수요 관리는 이제 위기를 벗어났나.
“전력 수급의 최대 고비로 여겨졌던 8월 셋째·넷째 주를 무사히 넘겼다. 전력거래소 전망을 보면 9월 첫주 예비력은 400만㎾ 초반 수준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수급 비상 단계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논란이 돼 온 밀양 송전탑 공사는 언제 재개하나.
“전력 수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밀양 송전선로 공사가 재개돼야 한다. 신고리 원자력 3, 4호기가 생산하는 전력(280만㎾)을 차질 없이 송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늦어도 10월에 공사가 시작돼야 내년 여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주민에게 약속한 특별지원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대화와 소통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와 밀양시, 주민 대표, 한전 등이 참여한 특별지원협의회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 주민들이 ‘정말 제대로 보상과 지원이 이뤄지는구나’ 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면 자연스레 공사 재개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

-10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에너지총회(WEC) 조직위원장이 됐다.
“인도(1983년)와 일본(1995년)에 이어 아시아에서 18년 만에 열리는 큰 행사다. 이번 총회엔 세계 100여 개국의 에너지 분야 지도자와 경영인 등 5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참석한다. 에너지 수요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세계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주최국으로 개도국과 선진국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에너지총회는 ‘내일의 에너지를 위한 오늘의 행동(Securing Tomorrow’s Energy Today)을 주제로 10월 13~17일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다. 총회와 함께 에너지 관련 산업 분야의 대규모 전시회, 청소년 에너지 체험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린다. 주요 참석 예정자로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칼리드 알팔리 총재, 로열 더치셸의 피터 보셔 최고경영자(CEO), 제너럴일렉트릭(GE)의 스티브 볼츠 발전부문 대표, 엘리자베스 디프오 피터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너지부 장관이다.)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이번 총회는 각 나라 장관급 인사, 학계, 에너지 업계 VIP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장(場)이기도 하다.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인 대기업은 거의 다 온다. 우리 기업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39개국의 에너지 장관이 참석하는 장관회의에서 향후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기본을 밝히는 ‘대구 선언’을 내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총회에서도 다룰 내용이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 생산구조는 어떤 것인가. 원전만 하더라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불안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에선 원전 비리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의 부실한 원전 관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비리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우리의 에너지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원전의 사회적 수용에 따른 논란, 에너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 높은 화석연료 의존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에너지 생산수단을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다.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원자력에너지는 여전히 가장 청정하고 경제적인 에너지다. 안정성 우려가 있지만 원전을 건설 또는 계획 중인 나라는 아직 상당수다. 원전과 화석연료·신재생에너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난해 12월 한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개혁을 언급했다.
“올여름 한전 직원들이 거리에 나가 ‘전기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했다. 사기업이라면 어느 회사가 자기들이 생산한 물건을 쓰지 말라고 호소하겠느냐. 한전이란 기업의 공공성이 높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재직했던 KOTRA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경기병 사단’과 같은 조직 특성을 지녔다면 한전은 ‘중무장 기갑사단’ 같은 느낌이다.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움직이면 파괴력이 있다.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가 아직도 사라지지않고 있다. 이를 혁신해야 한다. 조직을 이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선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하반기 주요 경영목표를 꼽는다면.
“아직까지는 올해에 영업흑자를 내는 걸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강력한 원가 절감 등을 통해 5년 만에 흑자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굉장히 쥐어짜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2조69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49조4200억원.)

중앙일보·중앙 선데이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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